이란 테헤란에서 이륙한 직후 추락한 우크라이나국제항공(UIA) 소속 여객기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란이 미군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사고가 발생해 테러 및 격추 의혹이 제기됐으나 이란 측은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란이 여객기 제조국인 미국에 사고 여객기의 블랙박스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관련 의혹과 양국의 신경전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UIA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는 8일(현지시간) 오전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직후 추락해 탑승자 176명이 전원 사망했다. 이란 도로교통부 대변인은 “이륙 직후 사고 여객기의 엔진 1개에서 불이 났다”며 “이후 기장이 기체 통제력을 상실해 여객기가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구 언론들을 중심으로 의혹이 제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연방항공청(FAA) 사고조사팀을 이끌었던 제프리 구체티가 “외부에서 의도적으로 불을 붙이거나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비행기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불이 붙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엔진 화재라는 설명에 대한 의혹 제기다. UIA도 조종사와 승무원의 경력, 여객기 상태 등을 고려하면 기체결함이나 조종사 실수에 따른 사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이란 측은 즉각 반박했다. 이란 메흐르통신은 이란군 총참모부 수석대변인이 의혹 보도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여객기에 탄 대부분의 승객은 이란 젊은이였다”며 관련 보도가 미국의 심리전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우크라이나 외무부에 따르면 희생자 중에는 이란인이 82명으로 가장 많다.
추락사고를 조사하고 있는 이란민간항공청은 9일 “초기 조사 결과 사고 여객기가 이륙해 서쪽으로 비행하다 문제가 생긴 뒤 이맘 호메이니 공항을 향해 우측으로 기수를 돌렸다”고 발표했다. 이어 “추락 직전 사고기가 불길에 휩싸였고 지면에 충돌하면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격추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거듭 반박한 셈이다.
이란은 또 미국에 여객기 블랙박스를 제공하지 않겠다며 신경전을 펼쳤다. 이란은 사고 현장에서 블랙박스 2개를 모두 회수해 분석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추락 원인에 대한 어떠한 조사에도 완전한 협력을 요구한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여객기가 추락한 장소가 이란이어서 조사 주체도 이란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항공기 소속 국가와 제조업체 등이 조사에 참여토록 허용하는 게 관행이다. 사고 여객기를 제조한 보잉과 여객기 엔진 제조사 제너럴일렉트릭(GE)은 모두 미국 기업이다.
여객기 사고 원인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이란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양국 갈등이 지속됨에 따라 원인 규명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원인 규명이 양국 긴장 고조 상황에서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권중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