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9일 보수 시민사회단체 주도로 만들어진 ‘혁신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에 참여하기로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사분오열된 보수 진영이 통합 논의 기구를 결성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보수 통합의 물꼬를 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도층까지 아우르는 통합 논의가 순풍을 탈 경우 4·15 총선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시민단체 국민통합연대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중도·보수 대통합을 위한 정당·시민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열고 박형준(사진) ‘플랫폼 자유와공화’ 공동의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추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중도·보수 세력을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데 합의했다.
보수 통합의 가장 큰 장애물인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에 대해서는 “탄핵 문제가 총선 승리에 장애가 돼선 안 된다”고 결의했다. 이를 포함해 자유와 공정을 통합 가치로 삼고, 청년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통합을 추구한다는 등 8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문을 발표했다. 회의에는 이양수 한국당 의원과 정병국 새로운보수당 의원이 각 당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한국당 이 의원은 “우리 당 황교안 대표가 이미 두 번에 걸쳐 3원칙(유승민 새보수당 의원이 보수재건 원칙으로 제시한 개혁보수·탄핵 극복·새집 짓기)을 수용한다고 밝혔고, 그것을 제가 와서 다시 확인했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춘천에서 열린 강원도당 신년인사회 후 기자들과 만나 “자유시민 세력들의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통합 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되면 한국당은 3년 만에 새 간판을 달고 총선을 치르게 된다.
새보수당은 통추위 구성을 반겼지만 황 대표가 3원칙 동의 여부를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통추위에 바로 참여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당 내 친박근혜계 의원들의 반발뿐 아니라 통합신당의 주도권 싸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태경 새보수당 책임대표는 “당대표가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 논의가 흘러갈 경우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했다. 새보수당은 황 대표가 입장을 표명하는 대로 통추위의 권한과 역할, 인적 구성 등에 대해 한국당과 협의할 예정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통합의 큰 고비를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당 관계자는 “우리공화당을 비롯한 강경한 세력을 어떻게 규합할지에 대한 논의는 남아 있지만 큰 틀의 통합 논의가 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당과 새보수당 간 통합 논의는 물밑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현재 통합 이후의 당 지도체제 등에 관한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통합신당이 순조롭게 출범할 경우 총선 판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도로 외연을 확장한 보수 진영이 정권심판론을 바탕으로 수도권 선거에서 선전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통추위는 추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비롯해 여러 중도세력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박형준 위원장은 안 전 대표 합류 가능성에 관해 “그것이야말로 통합의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싶다”며 “(귀국 후 안 전 대표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반대로 통합 과정에서 해묵은 계파 갈등이 재현돼 역효과가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우삼 기자, 춘천=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