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호르무즈 파병, 한·미 입장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

입력 2020-01-10 04:05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강 장관은 미·이란 충돌 사태와 관련해 “다음 주에 있을 한·미 또는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청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한·미동맹도 중요하지만 이란 등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파병 문제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외교수장이 민감한 사안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을 공개적으로 노출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강 장관은 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의 호르무즈 파병 요구 관련 질의에 “미국의 입장과 우리 입장이 정세 분석에 있어서나 중동 지역 나라와 양자 관계를 고려했을 때 반드시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란과도 오랫동안 경제관계를 맺어왔고 지금으로서는 인도적 지원, 교육 같은 것은 지속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요구에 응해 파병할 경우 이란 등 중동의 시아파 국가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음을 우려한 발언으로 분석된다.

강 장관은 “(미국 측이) 해협·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 확보를 위한 구상에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참여를 지속 요청해 왔다”며 “우리는 선박의 안전, 국민 보호 최우선 등을 고려하며 제반 상황을 검토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이 ‘미국의 요청에 대한 결론이 아직 나지 않았느냐’고 묻자 강 장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한·미 간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강 장관 발언에 대해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동맹국의 신뢰를 낮출 수 있어 외교적으로 적절치 않다”며 “굳이 미국을 거론해 향후 논의를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이 통제하는 원유 수송 루트인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점을 고려해 당초 상선 보호 차원에서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임무 수행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하는 파병 방안이 검토됐다. 이에 대해 강 장관은 “이미 그 지역이 아니더라도 근처에 있는 우리 자산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계속 검토해 왔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파병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워졌다. 또 향후 중동 정세 변화에 따라 파병에 관한 미국의 요구 수준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미국과 이란의 정면 충돌은 일시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향후 중동 지역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은 더욱 커진 상황”이라며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청해부대가 이동하는 수준보다 미국의 요구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오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할 예정이다. 양 장관은 이 자리에서 파병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는 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개최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대신해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한 회의에는 기존 상임위원 외에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과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도 참석했다. 상임위원들은 최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중동 지역의 한국 국민과 기업, 선박의 안전 확보를 위한 긴급대응체계를 점검했다. 또 김 차관과 정 차관으로부터 이번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보고받고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

이상헌 임성수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