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발 ‘테일 리스크’ 우려, “갈등 지속 땐 골칫거리”

입력 2020-01-09 18:2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적 맞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하루 만에 ‘중동 패닉’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새해 벽두부터 대형 충돌이 발생했다는 시기적 민감성까지 겹치면서 전문가들은 파장의 강도를 가늠하느라 분주하다.

지난해 줄곧 시장을 괴롭힌 미·중 무역분쟁이 일단락되면서 경기가 회복 흐름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점도 실망감을 키운다. 전면전까지 치닫지 않겠지만 세계 최강 미국과 중동지역 맹주 이란의 대결인 만큼 셈법은 복잡하다.

우선, 과거의 비슷한 충돌사건과 비교하면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해소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중원 현대차증권 투자전략팀장은 9일 ‘시장 전략과 전망 보고서’에서 블룸버그통신을 인용해 3대 지정학적 리스크 전례(1990년 걸프전, 2001년 9·11테러, 2003년 이라크 전쟁)를 언급하면서 “발생 직후 모두 단기적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해졌지만, 3개월 뒤부터 약화됐고 주식시장 또한 대부분 반등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의 경우 침공 2주만에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면서 금융시장 불안은 1개월이 지나지 않아 완화됐다. 이번 미국과 이란의 충돌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으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안전자산 선호, 즉 극도의 금융시장 불안은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두 나라의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갈등만 지속돼 특정 사인이 불거질 때마다 금융시장에 골칫거리를 던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갈등이 지속되는 ‘테일 리스크(Tail-risk)’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테일 리스크는 금융시장에서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고 예측하기 어렵지만, 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험을 뜻한다.

한국은행은 지난 8일 윤면식 부총재가 소집한 통화금융 대책반회의에서 이런 점을 지적했다. 한은은 “전면적 군사 충돌로 발전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관련 이슈가 수시로 부각되면서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추가 충돌 없이 외교전으로 넘어가는 게 최선이지만, 지난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시설 폭격 같은 국지적 공격 등이 간헐적으로 터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중론이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윤여삼 채권담당 연구위원은 미국과 이란 충돌을 두고 오는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수많은 불확실성 요인들이 언제 불거질지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미·중 무역분쟁이나 이란과의 충돌은 결국 미국 대선이라는 이벤트 때문에, ‘장사꾼’ 트럼프의 계산법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란과의 충돌 이후 트럼프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경선 후보와의 격차가 2개월 만에 10% 포인트에서 5% 포인트로 크게 줄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 입장에선 지난 2년여간 자신이 촉발한 ‘미·중 치킨게임’이 약발을 다하자, 이란과의 지정학적 대결로 재료를 바꾸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윤 연구위원은 “무역 관련 긴장감이 낮아진 반면 이제 정책 불확실성 지수 내에서 미국의 국가안전 관련 지표가 얼마나 올라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