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이달 말 출범… 투명경영 계기되나

입력 2020-01-10 04:03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9일 서울 서대문구 지평 사무실에서 위원장을 수락하게 된 배경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간담회 장소에는 300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리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병주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법감시위)가 이달 말 공식 출범한다. 준법감시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 혐의와 관련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가 준법 감시 제도를 마련하라는 권고에 따른 것이다.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은 9일 자신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원 명단 등을 발표했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는 회사 외부에 독립해 설치되는 기구”라며 “독립성과 자율성이 생명으로 삼성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때에 따라서는 법 위반 사항을 직접 조사하겠다”며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해 위원회가 곧바로 직접 신고받는 체계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준법 감시 분야의 성역을 두지 않겠다”며 “대외 후원금이나 공정거래 분야, 부정청탁 등의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노조 문제와 경영권 승계 문제 등에 있어서 법 위반 여부도 준법 감시의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7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법조계와 시민사회, 학계 등 외부 인사 중심으로 구성됐다. 외부 위원은 김 위원장을 비롯해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봉욱 변호사(전 대검찰청 차장), 심인숙 중앙대 교수 등 6명이다. 내부에서는 이인용 사회공헌업무총괄 고문이 참여한다. 준법감시위는 활동 시한을 정하지 않은 상설기구다.

일각에선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의 감형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다. 구성 자체가 이 부회장의 혐의를 심리 중인 재판부가 권고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도 이런 우려로 삼성 측의 위원장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만난 이 부회장이 준법감시위의 독립·자율을 확약하며 삼성을 대대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드러내 제안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준법감시위는 삼성그룹 내부에 속하지 않은 별도 외부 기구다. 삼성전자·물산·생명·SDI·화재 등 주요 7개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준법감시 업무를 수행한다.

최고경영진 등의 법 위반 행위를 신고받고 조사하는 권한을 갖는다. 법 위반을 확인하면 시정과 재발방지 방안을 회사에 요구하고, 요구를 삼성 측이 제대로 수용하지 않으면 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시민단체들은 준법감시위보다 삼성 계열사 이사회의 실질적인 역할 강화가 더 절실하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삼성그룹은 법적 책임이 없는 새 기구를 내세울 게 아니라 3월 정기총회에서 최고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해 이들이 주요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준법감시위 출범 자체를 사회적 약속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투명경영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삼성의 지배구조가 성장에 효율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 국민들은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경영을 바라고 있다”며 “감시위는 윤리경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치, 준법경영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대외적으로 공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해외 기업이라도 불법이 발견되면 형사처벌한다”면서 “삼성그룹이 세계적 기업으로 생존하려면 준법감시위의 실질적 운영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