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 부부(사진)가 영국 왕실의 고위 구성원에서 벗어나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성명 발표 전까지 여왕 등 다른 왕족들도 이 사실을 모를 만큼 ‘깜짝 선언’이었다. 해리 왕자 부부는 형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 갈등을 빚었고 사생활을 파헤친 언론에도 불만을 표시해 왔다.
영국 BBC방송, 가디언 등은 8일(현지시간) 해리 왕자 부부가 성명에서 “우리는 시니어(senior) 왕실가족의 일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재정적으로 독립하려 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영연방, 현재 맡은 직과 관련한 의무는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리 왕자 부부는 “여러분의 격려하에 우리는 수년간 이 같은 조정을 준비해 왔다”고 설명했다.
시니어 왕실가족은 통상 왕실 내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와 찰스 왕세자를 포함한 여왕의 직계 자녀, 찰스 왕세자의 직계 자녀인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 부부를 지칭한다. 해리 왕자는 2018년 5월 마클 왕자비와 결혼한 뒤 조모인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서식스 공작, 덤버턴 백작 및 카일킬 남작’이란 칭호를 받았고, 할리우드 여배우 출신 마클은 해리 왕자와의 결혼 이후 시민에서 왕족으로 신분이 바뀌며 ‘서식스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다른 왕족들은 성명 발표 전까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버킹엄궁 관계자는 “해리 왕자 부부와 다른 왕실가족 간 명백한 불화(rift)”라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스카이 뉴스도 이번 발표가 그동안 왕실가족 일원으로서 해리 왕자 부부가 받아왔던 압박감을 보여주며, 그들이 다른 형식의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
앞서 해리 왕자는 마클 왕자비와 결혼한 이후 형 윌리엄 왕세손과 불화설에 시달려 왔다. 해리 왕자는 지난해 10월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부 과장이거나 허위인 것은 아니다”라며 불화설을 사실상 인정했다.
해리 왕자 부부는 언론과도 갈등을 이어왔다. 해리 왕자는 어머니인 고(故) 다이애나빈(嬪)이 파파라치의 추적을 피하다 목숨을 잃은 경험이 있어 언론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해리 왕자 부부는 마클 왕자비가 생부 토머스 마클에게 보낸 편지 원문과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등을 보도한 언론을 고소하기도 했다. 해리 왕자는 “나는 어머니를 잃었고 이제 내 아내가 동일한 강력한 힘에 희생양이 되는 것을 본다”며 “언론 매체가 거짓되고 악랄한 내용을 끈질기게 유포할 때 인적 피해가 발생한다. 물러나서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신념에 배치된다”고 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