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법원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판단

입력 2020-01-10 04:05
대법원이 9일 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 보복을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서 검사에 대한 좌천 인사가 위법한지에 관한 것이다. 대법원은 안 전 검사장의 서 검사에 대한 인사 배치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에 잘못이 있다고 봤다. 형법상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죄를 말한다. 대법원은 서 검사를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내는 과정이 검사 전보인사의 원칙과 기준을 위반해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 인사담당자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적용대상이 공무원으로 제한돼 있는 직권남용죄는 직무상 권한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권한 남용이 법에 없는 일을 하는 행위로 실제 연결됐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등 구성요건이 까다로운 대표적인 범죄이다. 따라서 ‘직권’과 ‘남용’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문재인정부 들어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남발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등 검찰의 적폐수사에서 이 혐의로 대거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1, 2심에서 유무죄도 엇갈린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론과 정치에 떠밀려 직권남용을 폭넓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직권남용 범위가 확장되면 부적절한 정책이나 사소한 절차 위반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그래서 2006년 헌재의 직권남용죄 합헌 결정 당시 권성 재판관은 유일하게 위헌 의견을 통해 “(직권남용죄가) 정권 교체 시 전 정부의 실정을 들춰내거나 정치 보복을 위해 전 정부 고위 공직자를 처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권력을 남용한 공무원을 단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치적 목적이나 수사 편의를 위해 직권남용 혐의를 이용한다면 그 자체가 직권남용이다. 지금 정권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도 똑같이 적용하면 해당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