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위기→ 오일 쇼크’ 패러다임 무너졌나

입력 2020-01-10 04:05

중동 지역의 정치·군사 불안이 국제유가를 급등시키는 ‘오일 쇼크’ 시대는 끝난 걸까. 미국과 이란의 물리적 충돌 우려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국제유가가 빠르게 제자리를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번지더라도 과거처럼 주유소에 길게 차량들이 줄을 서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관측한다. 변화의 불씨는 미국이다. 미국이 원유 순수출국으로 변신하면서 원유 수급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9일 오후(한국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가격은 배럴당 59.80달러에 거래됐다. 전날 63달러 수준까지 치솟던 것과 비교하면 완연한 진정세다. 같은 시간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3월 인도분 브렌트유의 선물가도 배럴당 3.60%(2.46달러) 하락한 65.79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변동성이 축소된 1차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화 제스처’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미국은 평화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평화를 끌어안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하며 군사력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선 달라진 원유 수급환경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그 중심에는 원유 순수출국으로 올라선 미국이 있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1285만 배럴 수준이다. 글로벌 공급의 13%를 차지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까지 원유 생산량은 1400만 배럴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최진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도 “미국은 2018년 2월부터 원유 수출량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러시아가 중국과 중동 동유럽으로 향하는 송유관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인프라가 빠르게 갖춰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중동 리스크가 터지면 국제유가가 오른다는 공식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원유 순수출국이던 1967년에는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국제유가가 상승하지 않았었다. 미국산 원유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미국산 원유 수입량은 1억2457만5000배럴로 전체 수입량(9억8245만7000배럴)의 12.7%에 그쳤다. 같은 기간 중동산 원유 수입량은 6억9061만8000배럴로 전체 수입량의 70.3%나 됐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