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들을 총괄 지휘하던 대검찰청 핵심 검사장들을 모두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 청취 없이 이뤄진 대검검사급(검사장급) 인사로, 법조계에서는 검찰청법 위반을 넘어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내부에서는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해온 이들에 대한 노골적 쳐내기 인사”라며 “나쁜 전례가 될 것”이라는 성토가 나왔다.
법무부는 8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지휘한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부산고검 차장으로,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사건을 지휘한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을 제주지검장으로 보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검사장급 검사 32명의 인사를 단행했다.
종전과 달리 저녁 시간에 발표된 이 날 인사는 “‘정권 수사’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법조계의 예상대로였다. 윤 총장을 보좌했던 강남일 대검찰청 차장은 대전고검장으로,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수원고검 차장으로, 조상준 대검 형사부장은 서울고검 차장으로 옮겼다.
검찰은 청와대가 결부된 권력형 비리의 수사 당사자들이 명백한 좌천 성격의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한 부장 등 대검 참모진 다수가 옮긴 고검 차장 자리는 통상 갓 승진한 신임 검사장이 가는 곳으로 분류돼 왔다. 한 부장은 지난해 8월 이후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동부지검의 조 전 장관 비리 수사를 맡아 지휘해 왔다. 한 차장급 검사는 “노골적 검찰 인사의 발단은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였고, 울산 선거개입 사건 수사로 인해 결국 단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인사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검찰청법 위반에 해당하며, 직권남용 소지도 있다는 해석이다. 추 장관은 이날 오전 9시30분 윤 총장에게 “10시30분 법무부 장관실에서 면담하자”는 통지를 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인사위원회를 30분 앞두고 호출하는 것은 요식 절차에 그칠 우려가 있다”며 면담에 응하지 않았다.
추 장관은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윤 총장에게 “검사 인사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라”는 조치를 했다. 하지만 윤 총장은 “먼저 법무부의 인사안을 보내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인사가 발표된 이후 대검은 “의견 조율 과정은 전혀 없었다”고 확인했다. 다만 법무부로서는 윤 총장이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을 ‘의견 없음’으로 간주, 인사를 발표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검사장은 “법무부가 검찰청법의 단서조항이 애매함을 활용해 ‘반대했지만 권한은 우리에게 있다’는 식으로 짜놓고 끼워 맞추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수장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동문인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이 임명됐다.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은 고검장으로 승진, 법무연수원장으로 옮겼다. 애초 ‘검란’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검찰 관계자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도 “아무런 입장이 없다”고 했다.
허경구 박상은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