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수 보복’ 자존심 세운 이란 “美와 전면전은 원치 않는다”

입력 2020-01-09 04:11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8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이란의 미군 기지 공격에 대해 “미국의 뺨을 때려줬다”고 표현했다. AFP연합뉴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탄도미사일로 공격한 것은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보복을 명분으로 미국에 초강수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은 미 본토와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까지 타격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미국이 반격에 나설 경우 현재 갈등을 국제적 분쟁으로 확전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이번 공격이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에 따른 정당한 자위 조치였으며 더 이상의 상황 악화는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함께 내놨다.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전면전은 피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 셈이다. 반정부 시위로 위기를 맞았던 이란 정권이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을 민심 안정의 계기로 삼기 위해 이번 일을 벌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8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이란의 공격에 대응하겠다는 미 국방부 발표를 언급하며 “다음에는 미국 내에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본토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혁명수비대는 또 “이란 영토가 폭격당하면 UAE 두바이와 이스라엘 하이파를 겨냥한 3차 공격에 들어가겠다”고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2월 26일 이라크의 알아사드 기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는 모습. 알아사드 기지는 이란이 공격한 미군 기지 2곳 중 하나로 미군이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축출작전을 진행할 때부터 주둔해 왔다. AP뉴시스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미사일 전력을 갖춘 나라로 평가된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이란이 국경에서 약 2000㎞ 떨어진 곳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DIA는 “이란 정권은 친이란 무장조직에도 미사일 기술을 제공하고 있으며 미사일 전력의 위력과 신뢰성, 정밀도를 지속적으로 향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각오가 돼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혁명수비대가 공언한 대로 공격을 실시하면 미국은 물론 전 중동 국가를 적으로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이 국내정치적 측면을 고려해 이번 공격을 벌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내부에서는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이후 반미 정서가 고조돼 있다. 경제난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골머리를 앓던 이란 정권으로서는 국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릴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일란 골드버그 신미국안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인터넷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이란에서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해 조국을 수호한 사람으로 인기가 높았다”며 “권위주의 정권은 추모 분위기를 자신들을 향한 지지로 돌려놓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버그 연구원은 “국민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뭔가 행동을 취해야 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이란은 미사일 공격과 더불어 유화적인 메시지도 함께 발신했다. 이란 정권 대변인격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은 트위터에 “이란은 유엔 헌장 51조에 따라 비례적인 방어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한 뒤 “우리는 사태 악화 또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모든 침략에 대응해 우리 자신을 방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