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 기름 빼는 격”… 정권 겨냥 수사 동력 상실 우려

입력 2020-01-08 18:41 수정 2020-01-08 23:42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 주요 간부들이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법무부는 8일 검찰 인사위원회를 열어 검찰 간부 32명의 승진·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등을 지휘한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이 각각 부산고검 차장, 제주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합뉴스

법무부의 대검검사급(검사장급) 인사 결과 8일 교체된 대검찰청 참모진은 지난해 8월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착수를 결정했던 이들이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수사는 윤 총장이 선택한 첫 특별수사이기도 했다.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 등 참모진은 당시 “지금 검찰이 나서지 않으면 비난 여론을 받는다”는 ‘실기론’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5개월이 지나 이 같은 결정은 좌천 인사로 돌아왔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날의 인사가 추진된 계기를 결국 조 전 장관 수사로 본다. 검찰이 조 전 장관 비리 수사에 착수한 이후부터 청와대와 여권은 ‘정치적 수사’라며 검찰권 자제를 당부했다. 검찰 수사는 조 전 장관 이외의 갈래에서도 청와대를 겨냥했다. 울산지검이 오래도록 수사해온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청와대의 하명 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는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에서 본격화됐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해온 검찰 수사팀과 그들의 지휘라인은 처음부터 인사 불이익을 각오하고 일해 왔다고 한다. 한 검사장은 “권력 수사를 하면서 인사까지 잘 받을 것이라 기대한 검사는 없었을 것”이라며 “예로부터 선배들은 ‘수사했으면 됐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인사 대상자들은 “공직자는 주어진 제도와 시스템 속에서 일할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한 부장 등의 좌천을 두고 검찰 구성원들은 격앙된 반응이었다. 수사팀이 아닌 지휘라인에 대한 배제 조치이긴 하지만, 수사에의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달리는 자동차에서 기름을 빼는 격인데 어떻게 다시 달리겠느냐”고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당장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무마 주체 규명,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가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법무부가 윤 총장과의 대면 없이 모든 대검 참모진을 교체해버린 이번 인사를 두고 절차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윤 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만나 협의하는 절차가 생략된 것은 검찰청법 위반 문제로, 진행 중인 주요 수사 지휘라인이 한직으로 발령된 것은 직권남용 소지로 거론된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형식적으로 했다면 검찰청법 위반에 해당하며, 추후 직권남용의 중요한 징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유죄 판결을 주목하고 있다. 안 전 국장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이를 덮으려 보복성 인사 조치를 한 혐의로 2심까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안 전 국장이 서 검사를 부치지청(차장검사가 없는 지청)인 여주지청에서 또 다른 부치지청인 통영지청으로 거푸 발령낸 것이 공정한 검찰 인사를 훼손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검찰 내부에서도 “검찰 인사의 공정성을 해친 행위는 ‘중대한 범죄’로 판단돼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구승은 박상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