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美-이란 충돌에 무기력한 국제사회… 안보 리더십 보여야

입력 2020-01-09 04:01
이란이 미국을 향해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미사일 수십 발로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 2곳을 타격했다. 미국의 드론 공습에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한 지 나흘 만이다. 이란은 그가 폭사한 시간에 맞춰 공격을 개시하며 보복임을 분명히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는 정면대결이 현실화한 것이다. 양측은 전형적인 치킨게임에 빠져들었다. 공격과 반격에 수반된 발언이 이를 말해준다. 드론 공습 이후 “이란이 반격하면 52곳을 공격하겠다”던 트럼프의 말과 보복 공격 이후 “미국이 대응하면 더 큰 고통을 주겠다”는 이란혁명수비대의 말은 ‘네가 먼저 핸들을 꺾으라’는 메시지와 다르지 않았다. 지금 미국과 이란은 전면전이란 파국을 가운데 놓고 무모함을 경쟁하고 있다. 군사 대국과 중동 맹주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파장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유롭지 못할 비극적 사태의 목전에서 국제사회의 대응은 무기력하다. 프랑스 대통령이 이란 대통령과 통화해 긴장 완화를 주문한 것, 유엔 사무총장이 양측에 자제를 촉구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이고, 미국은 이란 외무장관의 비자 발급을 거부해 유엔 방문까지 가로막았다.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세계 질서를 뒤흔든 지 3년 만에 국제사회의 안전보장 리더십은 이렇게 와해됐다. 치킨게임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핸들을 꺾는 것이다. 당사자들에게 합리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이를 압박하고 유도하는 주변의 힘이 필요하다. 유엔이든, 유럽연합이든, 중국·러시아 진영이든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나서야 한다. 국제사회가 서둘러 움직여야 할 때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는 호르무즈해협을 지난다. 이곳이 봉쇄될 경우 비축유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6개월 정도다. 최악을 가정해 면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긴장이 길어질수록 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된다. 금융시장은 이미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갈등의 완화로 경제에 숨통이 트일 거란 기대 역시 중동의 복병을 만나 예측불허 상황이 됐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반영해 전반적인 경제 운용 계획도 다시 살펴보기 바란다. 최우선적으로 대처할 문제는 중동에 있는 우리 국민의 안전이다. 외교부가 재외동포영사실장을 급파했다. 영국은 자국민 보호 등을 위해 걸프지역 병력을 증강하는 계획도 마련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