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친박계에 발목 잡힌 보수 통합

입력 2020-01-09 04:07
보수 통합 논의가 친박계 의원들에게 발목이 잡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의원의 ‘보수재건의 3대 원칙’을 수용하는 것을 친박계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직도 박근혜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다. 보수 통합이 일개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의 보수가 혁신을 통해 새로운 보수로 거듭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도 없이 단순히 몸집을 불리기 위한 보수 통합이라면 의미가 없다. 건강하지 못한 보수가 세를 불리려 한다면 오히려 막아야 할 일이다.

유 의원이 제시한 보수 재건의 3대 원칙은 탄핵을 거론하지 않고, 개혁보수로 나아가며, 신당을 창당해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보수 혁신이다. 하지만 친박계가 반대하고 있다. 유 의원이 탄핵에 찬성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친박계는 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의 당 대 당 통합도 반대한다. 통합을 할 경우 한국당을 탈당해 우리공화당 등으로 가겠다는 의원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통합을 하면 4·15 총선 공천권을 일부 빼앗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공화당도 새로운보수당을 제외한 보수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옥중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태극기부대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퇴행적이고 극우적인 보수의 길을 가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한국당이 친박계와 태극기부대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 하는 한 건강하고 합리적인 새로운 보수의 탄생은 기대할 수 없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보수 세력과 야당이 있어야 정부 여당을 견제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정부 여당도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고 선의의 경쟁을 벌일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나 정치 발전을 위해서나 보수 혁신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한국당 모습으로는 자체 혁신이 불가능하다. 보수 통합을 통해 그나마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 보수 통합이 중도 확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과의 통합에 실패하면 4·15 총선은 정권이 아닌 야당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