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레바논까지 세기의 탈주극을 벌인 카를로스 곤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의 첩보영화 같은 탈주극이 전 세계에서 화제다. 그는 음향장비 수송용 하드케이스에 몸을 숨겼고 엑스레이 보안검사도 받지 않았으며, 탈주 과정엔 전직 특수부대 요원들과 민간제트기 2대가 동원됐다고 한다.
곤 전 회장의 탈주극 과정 못지않게 관심을 끈 게 일본의 가혹한 수사 및 사법체계다. 2018년 11월 소득 축소 혐의로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됐던 그는 이후 석방됐지만 배임 등 별건 수사로 이어지면서 다시 체포와 석방을 반복해야 했다. 보석으로 풀려난 다음 “진실을 말하겠다”고 하자 또 체포돼 결국 1년도 되지 않아 네 차례 체포되는 기록을 세웠다. 이런 상황까지 이르자 서방 국가들의 비상한 관심 속에 일본 특유의 ‘인질사법제도’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곤 역시 자신이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도쿄지검 특수부는 일본 검찰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다. 1970년대 록히드 사건 수사로 전 총리를 구속했고, 1980년대 리쿠르트 사건 때는 현직 총리를 중도하차시킨 기념비적인 성과(검찰 입장에서)를 냈고, 일본 국민들의 전폭적인 신망을 얻었다.
그러던 일본 검찰은 10년 전 오사카지검의 증거조작 사건이 불거지더니 얼마 전 아베 신조 총리 부부가 연관된 의혹이 있던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수사에서 관련자 38명을 모두 불기소처분하면서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날고 긴다는 그 일본 검찰도 최고 권력자의 심중을 알아서 헤아린다는 ‘손타쿠(忖度)’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며칠 전 도쿄지검 특수부가 비리 혐의로 집권 여당 의원을 체포한 게 1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화제가 될 정도니 일본 검찰도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비슷한 시점, 한국 검찰은 어떤가. 일본과 사법체계 및 검찰 제도가 유사한 한국의 검찰도 일본과 상황은 다른 듯하면서도 위기를 맞은 모습은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정부와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이미 죽은 권력에 대한 날선 수사로 많은 인사를 구속했던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비리 의혹 수사로 청와대, 정부, 여당으로부터 “미쳐 날뛰고 있다” 등 맹비난을 받았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수사에 대한 비난 수준 역시 결코 낮지 않았다. ‘직권남용으로 법치주의를 후퇴시키고 국가기능의 공정한 행사를 저해했다’는 법원의 일차적 판단은 이른바 문재인정부엔 뼈아픈 대목이지만 실상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하다.
불과 6개월 전 검찰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주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검찰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문 대통령은 “선출권력으로서 헌법에 따라 권한을 다하겠다”고 검찰 개혁 의지를 거듭 분명히 한 상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검찰 고위직 인사가 있기 전부터 정치권과 서초동에선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이 오갔다. 법무장관은 검찰 통제수단으로 검사 인사권, 감찰 권한을 갖고 있고 인사는 당연한 권리행사지만 인사는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검찰 인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사실상 잘라버린 셈이 됐다. 명백한 ‘보복 인사’라는 시각도 많다.
이번 인사에 대해 “검찰 본연의 업무인 인권보호 및 형사·공판 등 민생과 직결된 업무에 전념해온 검사들을 우대했다”는 법무부 설명은 군색하다. 지난해 7월 이후 이뤄진 검찰 고위직 인사가 문재인정부의 실세 수사에 대한 명백한 보복성 인사라면 이는 정부가 입으로만 ‘개혁’을 외치고 이 정부가 그토록 혐오하고 적대시했던 ‘적폐’로 스스로 돌아가는 꼴이다. 검찰 개혁의 요체는 복잡한 게 아니다. 바로 독립성, 공정성을 기하는 것이다. 검찰의 본령인 수사의 공정성을 더욱 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그게 검찰 개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남혁상 사회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