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숙 (14) 유엔 “한국, 아동인권 인식 낮다” 권고문에…

입력 2020-01-10 00:06
아동 대표들이 2003년 11월 17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아동권리주간 선포식’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내의 아동인권과 유엔아동권리협약 인식 증진을 위해 국내외로 다니며 애썼지만, 변화는 쉽지 않았다. 협약 비준국은 비준 2년 후 첫 번째 협약 이행보고서를 쓴다. 이후 5년마다 국가가 이행보고서를 쓰면, 비정부기구(NGO)는 이에 대한 민간 보고서를 쓴다. 국제 사회는 정부보고서와 민간보고서를 기반으로 각 정부의 협약 이행을 심의한 뒤 권고문을 보낸다.

우리 정부는 당시 두 번에 걸쳐 국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보낸 권고문은 나를 비롯한 아동인권옹호가에게 큰 실망과 좌절을 줬다. 권고문에는 한국 사회의 아동인권 인식이 매우 낮고, 협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내용이 실렸다. 협약의 적극적인 홍보와 아동인권 교육·훈련사업 개발 및 시행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협약 채택일인 11월 20일을 앞두고 세이브더칠드런은 관계 기관과 협력 체제를 만들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월드비전의 대표와 법조계 인사 등으로 아동권리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위원장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가 맡았다. 나는 사무국장으로 실무를 봤다. 위원회는 2003년 11월 17일 ‘아동권리주간 선포식’을 열었다. 매년 협약 채택일이 있는 한 주를 ‘아동권리주간’으로 지키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영부인 고 이희호 여사와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했다.

권리의 주체는 아동이다. 아동기는 그 발달 단계와 특성을 존중받아야 한다.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려면 의무이행자의 책무성 이행이 선행돼야 한다. 의무이행자는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다. 이 가운데 정부는 첫 번째 의무이행자다. 아동인권을 보장함에 있어 정부의 책무성과 역할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는 의미로, 협약에 명시된 내용이다.

아동권리주간 선포식을 시작으로 아동권리 인식 증진과 교육·훈련을 위해 다양한 민관협력 사업을 만들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경우 2005년부터 3년간 보건복지부 공모사업에 참여해 어린이날 행사를 아동인권에 기반한 행사로 바꿨다. 행사 주인공인 아동이 지루한 날이 아닌, 이들이 주인 되는 즐거운 날로 바꾸는 데 이바지했다. 2009년부터 3년간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아동권리협약과 함께하는 아동·청소년의 권리’란 교재를 개발했다. 일반 대중뿐 아니라 아동 청소년 보육교사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등을 위한 맞춤형 교재를 만들었다.

법무부와도 협력 사업을 펼쳤다. 2005년 7월 교정공무원과 청소년보호관을 위한 인권 감수성 향상 교육훈련이 필요하다며 법무부 사무관이 우리 기관을 찾았다. 이 분야에서 40여년 일했지만, 공직자가 NGO를 찾아 인권교육훈련을 요청한 건 처음이었다. 구금시설이나 보호시설에 인권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선 먼저 직원의 인권감수성이 향상돼야 하는데, 이런 교육을 진행해줄 기관을 찾는다고 했다. 또 한 번의 호기를 만났음을 직감했다.

나는 2005년 하반기부터 2009년 말까지 워크숍 방식의 교육 프로그램을 법무부 공직자들에게 진행하며 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했다. 지금도 기이하게 여기는 건 가장 필요한 때에 가장 적절한 사람과 연결돼 이들과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때 만난 보건복지부 아동안전권리과장과 법무부 인권국 사무관을 지금도 잊지 않는 이유다. 기적적인 만남을 주관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동인권 발전을 이끈 전능한 분의 손길을 지금도 느끼며 감사한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