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이 몰아쳐야 할 1월 초인데도 지금 한반도에는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제주도는 4월 중순에나 가능할 정도로 하루종일 영상 15도가 넘는 고온이 계속되면서, 봄꽃인 철쭉과 유채꽃이 만개하는가 하면, 반소매 옷을 입은 시민들까지 눈에 띄고 있다.
7일에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아침 최저기온과 낮 최고기온을 기록하기도 했다. 제주지방기상청은 제주시의 낮 최고기온이 오후 2시 현재 23.6도까지 올라, 1923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97년 만에 1월 낮 최고기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종전 1월 최고기온은 1950년 1월 17일의 21.8도였다. 이번 겨울의 제주 낮 최고기온은 평년보다 무려 15도나 높은 것으로, 4~5월의 봄, 심지어는 6월 초 초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최저기온 역시 지역별로 역대 최고치였다. 제주시의 아침 최저기온이 18.5도, 서귀포 17.3도, 제주시 고산 17.1도, 서귀포시 성산 16.9도 등이었다.
이상 고온현상에 시민들의 옷차림도 바뀌었다. 외투 없이 셔츠와 스웨터 차림으로 거리를 다니면서도 추운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을 활짝 열고 운전을 하는 운전자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때 이른 꽃들의 개화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시에서도 다소 고지대에 위치한 제주대 캠퍼스에는 늦은 봄에나 피는 철쭉이 연분홍 꽃을 활짝 피웠고, 제주시 한림읍의 한 휴양공원에는 때 이른 백매화가 개화해 고운 자태를 뽐냈다. 서귀포 안덕면 산방산 인근을 포함해 제주 곳곳에는 노란 유채꽃이 봄처럼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제주공항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봄 날씨에 감탄을 자아냈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윤모(38)씨는 “겨울 제주 정취를 기대했는데 봄 여행을 온 것 같다”고 했다.
농가에선 걱정이 태산이다. 감귤농사를 짓는 문모(49)씨는 “올해는 가을에 비가 많아 감귤 농사가 잘 안됐는데, 1월에도 이렇게 날씨가 습하고 기온이 높으니 감귤 부패율이 높아질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제주뿐 아니라 대부분의 남부지방에서도 때 이른 개화 소식이 들리고 있다. 광주시 서구 치평동의 공원에는 동백꽃이 피었으며, 부산 남구 유엔평화공원에는 2월 말쯤 피는 홍매화가 피어났다.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도 매화가 개화했으며, 일부 남부지방에선 벚나무의 꽃망울이 맺히고, 장미 등이 피어난 곳도 있었다.
가장 추운 강원도 산간지역에선 눈 대신 비가 쏟아져 계획돼 있던 한겨울축제들이 줄줄이 연기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11일 산천어축제를 개막키로 했던 강원도 화천군은 결빙된 화천천에 ‘겨울비’가 스며들지 않도록 임시 둑을 만들기도 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