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DH 합병은 독점? 혁신?… 공정위, 결합 심사 ‘딜레마’

입력 2020-01-08 04:04

‘배달의민족(배민·우아한형제들)’과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의 인수·합병(M&A)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기업결합 심사를 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선택에 시장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민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시장만 놓고 보면 압도적 점유율로 국내 1위다. 2·3위를 차지하고 있는 ‘요기요’ ‘배달통’을 소유한 DH와 배민의 결합은 사실상 독점을 용인하는 셈이 된다. 하지만 배달 앱 시장은 배민 등 일부 사업자가 새로 창출한 시장인데, 공정위가 배달 앱 시장만 놓고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는 건 ‘혁신’을 가로막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야말로 공정위가 ‘독점’과 ‘혁신’ 사이에서 고민에 빠진 것이다.

기업결합 심사의 첫 쟁점은 ‘시장 획정’이다. 일반적으로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에서 최우선 기준은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제한성이다.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 기준에 따르면 기업결합 대상 회사들이 총 공급액 3000억원 이상의 거래분야에서 1위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고, 2위 회사와의 시장점유율 차이가 25% 이상이면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으로 본다.

배달 앱 시장만 놓고 보면 배민과 DH의 결합은 명백하게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이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배달 앱 시장점유율은 배민이 55.7%로 1위다. 이어 요기요 33.5%, 배달통 10.8%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 데이터 분석에서도 배민은 이용자 수 885만7421명으로 요기요(490만3213명), 배달통(42만7413명), 쿠팡이츠(18만5519명), 푸드플라이(2만4355명) 등 다른 배달 앱을 압도한다. 다만 전체 배달업으로 시장 기준을 확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소비자와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쟁점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모처럼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세계시장 진출을 앞둔 만큼 공정위의 전향적 판단을 주문한다.

올해 경제 활력 제고에 총력을 기울이는 정부 역시 고민이 깊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 후생의 부정적 효과와 혁신 촉진 부분을 비교해 균형감 있게 접근하겠다”면서도 “공정위가 혁신을 촉진하는 측면도 있고, 혁신을 가로막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결정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전임 공정거래위원장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난해 11월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 실장은 당시 공정위의 LG유플러스(통신사)·CJ헬로비전(유료방송) 간 기업결합 승인을 거론하면서 “이런 담대한 결정들을 우리 사회가 여러 분야에서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공정위가 경쟁제한적 결합으로 판단하더라도 기업결합을 무조건 승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가격인상 제한이나 시장점유율 인하 등의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기업결합을 승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그러나 통신사·유료방송 간 기업결합과 달리 배민과 DH의 기업결합은 가맹점주, 배달 노동자, 소비자 등 다양한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가 얻을 편익이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여당이 공개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은 것도 부담이다.

이에 공정위 심사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규정상 심사는 120일 이내에 마쳐야 하지만, 대상 기업의 자료제출이 지연되면 1년을 넘길 수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7일 “아직은 심사 방향 등에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심사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