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 카드를 다시 꺼내며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으로 함께 침체됐던 남북 관계를 적극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남북 관계가 북·미 협상의 종속 변수가 되는 상황을 벗어나 남북 관계의 주도적 개선을 통해 북·미 대화의 진전을 견인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과의 공조, 북한의 냉담한 태도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길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북·미 대화의 교착 속에서 남북 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되는 지금 북·미 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를 촉진하는 것과 별개로 남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대로 하자는 것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올해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평화통일 의지를 다지는 공동 행사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지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을 향한 한국 답방 제안을 다시 꺼낸 것이다. 김 위원장 답방은 2018년 9월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이후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킬 카드로 거론됐다. 김 위원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당시 평양공동선언에 명시했지만 이후 여건이 여의치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 제안은 집권 4년차를 맞은 문 대통령이 북·미 협상 진전 여부만 지켜볼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문제와 올 연말 대선 등 국내 정치 사정상 북한과의 협상이 후순위로 밀리는 것 같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여기에 최근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일촉즉발 상황에 이르면서 북한 문제가 미국의 관심사에서 더욱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돌파구로 삼아 북·미 관계까지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해 보인 태도를 감안하면 당장 긍정적으로 호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한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 방안들을 내놓느냐에 따라 북한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이 금강산 남측 시설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한 상황이지만, 관광 재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스포츠를 통해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구체적으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와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제1회 동아시아 역도 선수권대회 및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북한의 참가를 제안했다. 또 올해 도쿄올림픽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을 위한 협의도 이어가자고 했다.
이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한·미·일 3국 간 안보 고위급 협의 참석차 미국으로 떠났다. 정 실장은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최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의견들을 교환하게 될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 협상, 이를 통한 항구적인 평화 정착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한 북·미 협상 촉진이라는 문 대통령의 구상을 미국에 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