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 앞다퉈 지역화폐 발행… 득인가 실인가

입력 2020-01-11 04:03

전국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지역화폐 발행 경쟁이 뜨겁다. 지역에 뿌리를 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살리자는 게 지역화폐의 출발선이다. 지폐형, 카드형, 모바일형 등 형태는 다양하다. 흔히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불리는 데, 지역 내 대기업 쇼핑몰이나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가맹점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지역 소득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는 이점이 있다. 발행액의 4%는 국고로 보조하고 추가로 비용은 지자체가 보탠다. 지역 가맹점에서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4~10%의 인센티브(캐시백 혹은 할인 혜택)를 주는가하면, 지역 복지수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기도 한다.

지역화폐는 침체한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자일까. 아니면 폐쇄경제를 형성해 장기적으로 독이 되는 걸까.

어디서 왔나

지역화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태어났다. 본래 정부에서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주도였다.

인천 서구에서 8년 동안 광고업을 하고 있는 장영환(71)씨도 지난해 말까지 민간 주도 지역화폐를 사용했었다. 장씨는 2016년에 대형 쇼핑몰이 골목상권에 침투하자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인천 서구연심회상인협동조합’ 회원들의 후원을 받아 ‘동네사랑상품권’을 만들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시민단체와 복지기관도 동참하면서 가맹점 수는 점점 늘어났다. 상품권엔 3% 할인 혜택이 있어 시민들에게도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장씨는 “지난해 5월 구청에서 ‘e음 카드’라는 지역화폐를 내놓으면서 동네사랑상품권은 발행이 중단됐지만 지역상품권이 없었으면 상권이 제대로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지역화폐가 향후 계속 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발행하는 지역화폐도 ‘할인 쿠폰’에 가깝다. 다만 재원을 민간 조합이 아니라 정부가 부담한다는 차이가 있다. 지역화폐로 상품을 결제할 때 즉시 할인 혜택을 주거나, 포인트를 쌓는 식으로 화폐 사용을 유도한다. 정부 재원으로 유통량을 늘려 내수를 살리는 게 목표다.

무섭게 치솟는 발행 규모


지자체는 지역화폐로 ‘치적’을 쌓고, 지역주민은 돈을 아낄 수 있으니 발행 규모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를 3조원으로 추산한다. 지난해 2조3000억원보다 30.4%(7000억원) 늘어난 수치다.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99곳에서 올해 지역화폐를 발행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화폐의 빠른 유통 속도는 넘치는 발행 규모를 흡수한다. 매년 ‘돈맥경화’에 신음하는 법정화폐와 대조된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연간 발행액 대비 환전율은 평균 89%(1조884억원)에 이른다. 환전이란 지역화폐로 물건 대금을 받은 가맹점주가 은행에서 다시 현금으로 바꾸는 걸 말한다. 찍어내는 만큼 소비도 활발한 것이다.

경기도는 지역화폐 ‘성지’로 불린다. 지난해 4월부터 31개 시·군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전북 군산시의 ‘군산사랑상품권’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할인율(10%)을 자랑한다. 덕분에 지난해 4000억원어치를 완판했다. 군산시민에게 400억원이 돌아간 셈이다.

지역화폐의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행안부에 따르면 지역화폐의 소상공인 소득증대 효과는 10년 이상 정착단계에 이르면 비약적으로 뛴다. 최근 5년 새 지역화폐 발행이 본격 시작됐다는 걸 감안하면 발행 효과는 앞으로 5년 뒤에 더 커질 수 있다.

지역화폐로 입이 귀에 걸린 곳은 강원도다. 강원도는 소득의 역외유출이 가장 심한 지역이다. 한국은행의 ‘2019년 화폐 환수율 현황’을 보면 강원도의 지난해 1~9월 중 화폐 환수율(발행액 대비 환수액)은 31.8%로 전국에서 꼴찌다. 같은 기간 1위인 제주도의 환수율은 220.0%다.

하지만 지역화폐가 유통된 첫 해인 2017년부터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원도의 ‘강원상품권 현황 관리시스템’과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지역소득의 역외유출 규모는 2016년보다 5000억원 줄었다. 여기에 지역화폐 발행 이후 누적 환전율은 지난해 11월 기준 93%로 전국 환전율(89%)을 웃돌았다. 지역화폐가 소득의 역외유출을 막아주는 ‘방파제’ 구실을 하는 셈이다. 이동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지역화폐 효과를 구체적으로 검증하려면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지만, 지역화폐 결제량이 느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을 잃은 지역 상인에게 힘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걸음마 단계…부작용 만만찮아

지역화폐가 ‘만능’은 아니다. 마찰음도 끊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무책임한 선심성 정책’으로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시는 지역화폐의 캐시백 혜택을 기존 6%에서 지난해 3%로 대폭 줄였다가 올해부터 4%로 재조정했다. 사전에 지출 규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탓이다. 시청의 ‘뒤죽박죽 행정’에 구청은 괴롭다. 구민들과 약속했던 할인 혜택을 지키기 위해 없는 재원을 쏟아붓거나 지역화폐 발행을 다시 생각하기도 한다.

대전시에선 지역화폐가 되레 시민들을 갈라 놓았다. 올해 2500억원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 예정이었지만, 시민들 반대에 부딪혔다. 지역화폐 사용 빈도가 구마다 천차만별이면 ‘빈부격차’가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서다.

지역화폐가 ‘폐쇄경제’를 만들어 국가 전체의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한은은 지역화폐 발행이 지역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정부 주도 지역화폐 발행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역화폐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국민 세금을 지역에 나눠주는 정책 수단인 셈”이라며 “소득 재분배 관점에서 효과를 보려면 고소득자들이 지역화폐 할인 혜택을 볼 수 없도록 세밀한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