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 대통령 대북 제안 실효성 있나

입력 2020-01-08 04:01
북·미 협상 실패 남북 관계로 돌파구 마련하려 하나 북 응할 가능성 적어…
독자 행보로 한·미 공조 균열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신년사를 통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답방을 비롯해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다. 북·미 대화가 단절되고 무력 충돌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남과 북이라도 협력을 모색해 보자는 의미로 보인다. 북·미 관계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하고 있기보다는 뭐라도 해보려는 취지는 이해한다.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선순환을 목표로 미국의 대북 제재에 보조를 맞추며 북·미 관계가 개선되기를 기다렸지만 지금은 파국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만큼 남북 관계라도 먼저 풀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이 응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에도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 ‘자화자찬하면서 철면피하게 놀아댄다’ ‘아전인수 격의 궤변’ ‘창피스러운 입방아 그만 찧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더구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언제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북한이 무력 도발을 하는데도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 남북 협력을 추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혹시라도 총선을 앞두고 진보 성향 지지자들의 환심을 사고 이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독자 노선을 걸으려 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 답방 외에도 접경지역 협력, 남북 스포츠 교류,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공동 등재, 6·15 20주년 공동행사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역시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ICBM을 쏘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이다. 북한이 무력 도발을 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등 강경 대응을 할 것이 뻔한데 한·미 공조를 무시하고 독자 행보를 하겠다는 것인가. 결국 문 대통령의 대북 제의는 허공에 뜰 가능성이 높다.

다만 당장은 아니더라도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반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의 돌파구를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해 마련해볼 생각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여서 제재 완화 문제가 비핵화 조치와 맞물릴 경우 협상을 재개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북·미 협상은 실패했지만 문 대통령이 남북 협력을 유인책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들인다면 미국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