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시대 ‘벽보’ 고집하는 공개수배… 범인 검거 도움됩니까

입력 2020-01-08 04:03

수십년째 ‘벽보’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경찰의 공개수배 제도를 둘러싸고 최근 실효성을 둘러싼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범행 피의자를 널리 알려 범인을 체포하는 데 1차 목적이 있지만, 제한된 공간에 벽보를 부착하는 형태여서 실제 범인 검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는 대학 벽보, 게시물도 모두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상황인데, 제한된 ‘오프라인’에서만 보이는 수배자 명단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경찰청은 지난 1일부로 전국 경찰서와 지구대·파출소 등에 게시된 종합공개수배자 20인 벽보 약 2만부를 교체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은 6개월마다 전국의 기존 벽보를 제거하고 새 벽보를 부착한다. 종합공개수배 명단은 경찰 내부 공유 용도인 ‘지명수배’ 대상자 중 지방청 추천을 받아 경찰청이 결정한다. 경찰 훈령 상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마트 등 운집장소에도 게시될 수 있지만 민간과의 협의가 필요해 지역마다 게시 현황은 모두 다르다.

벽보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종합 공개수배자의 명단을 공식 확인하기 어렵다. 경찰청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스마트 국민제보’가 온라인상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여기선 캡처가 제한돼 있다. 가끔 각 경찰서에 배포된 수배명단이 협의없이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가 있지만 절차에는 어긋난 일이다. 일반 시민들로부터 수사 협조를 받기 위한 게 애초 공개수배의 목적이지만 실제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수배명단을 확인할 방법은 적은 셈이다.

방송을 통해서 수배자를 공개하는 경우도 드물다. 각 관서장이 공개수배 여부를 결정하는 ‘긴급 수배’ 대상자의 경우 그나마 지방청장이 자율적으로 방송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실제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긴급수배 자체도 드물어 지난 3년간 전국 관서에서 긴급수배 명단에 오른 피의자는 7명에 불과했다. 종합공개수배자의 경우 방송을 위해서는 별도 내부 논의를 거쳐야 하고 실제 결정이 내려진 경우도 희귀하다.

경찰이 ‘벽보’ 수배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건 우선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온라인에 현상수배 명단이 퍼지면 나중에 ‘수배 해제’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면서 “수배자 명단에서 내려오더라도 이미 온라인상에서 퍼진 걸 경찰에서 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훈령 외에 수배 요건을 규정한 상위 법률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법률이 없기 때문에 만약 수배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변수가 발생하면 수배를 요청·결정한 경찰이 책임진다”면서 “일선 형사들이 적극적일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개수배를 실효성 있게 하려면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애초 공개수배라는 것 자체가 피의자 신상공개의 한 종류”라면서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를 판단하는 ‘신상공개심의위원회’에서 일괄적으로 공개수배 대상과 방송 여부 등 수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이 적극적으로 공개수배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지상파의 현상수배 프로그램은 실제 검거로 이어진 사례가 상당했지만 2007년을 마지막으로 맥이 끊겼다. 이 교수는 “방송을 통한 공개수배는 시민들의 수사 협조를 끌어낼 수 있고 범죄동기를 억제할 수도 있다”면서 “모방범죄의 우려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공영방송이 적극 나서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