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살해에 격분한 이란이 핵 개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란 정부는 2015년 체결한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규정한 의무사항 이행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적 탈퇴로 위기를 맞은 JCPOA가 4년 만에 좌초 위기를 맞은 것이다. JCPOA의 유럽 당사국인 독일과 프랑스, 영국이 이란에 핵 합의 복귀를 촉구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 개발을 막기 위해 핵시설 폭격이나 사이버 공격 등 직접 행동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란 정부는 5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이란은 농축우라늄 생산능력과 농축도, 핵물질 생산량, 연구개발 등에서 JCPOA의 모든 의무사항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보유한도도 철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CPOA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도 상한선을 3.67%로 규정한 바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JCPOA 탈퇴 이후 이란은 우라늄 농축 농도를 높여 왔다. 이란은 지난해 11월 상한선에 해당하는 5% 농도까지 상향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마저도 없애기로 한 것이다. 농축도 20%를 넘는 고농축 우라늄은 핵무기의 원료로 사용될 수 있어 이란이 ‘레드라인’을 밟은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란은 제재 해제를 전제로 JCPOA에 복귀할 의사가 있다는 뜻도 함께 강조했다. 이란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제재가 해제되고 핵 합의에 따른 이익을 다시 얻을 수 있다면 JCPOA 준수로 되돌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언급은 자신들의 행동이 합법적인 틀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사태 악화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논리의 연장선상이어서 트럼프 행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다. 도리어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 개발을 막으려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 파괴를 위해 군사적 행동이나 사이버 전쟁을 벌여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라크 의회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표결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군 철수 결의안은 수니파와 쿠르드족 계열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시아파 출신 의원들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가결됐다.
결의안에는 “정부는 모든 외국 군대의 이라크 주둔을 끝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외국 군대가 우리의 영토·영공·영해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라크 의회의 결의는 구속력이 없어 이라크 정부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원내각제 국가인 이라크의 특성상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미군 주둔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것은 중동에서 미국의 전략적 입지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슬람국가(IS) 잔존 세력이나 이란에 대한 공동전선 형성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당장 IS 격퇴를 위해 결성된 국제동맹군은 이날 IS 잔당 소탕을 위한 작전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반미 정서 탓에 미국 주도의 동맹군 부대를 겨냥한 공격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조치다.
조성은 이형민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