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부가 미군의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살해를 규탄하기 위한 외교전에 나섰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라크 영토에서 숨졌고 이라크 측 인사들까지 사망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의 ‘임박한 공격’을 명분으로 실시한 공습작전의 국제법 위반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란 유적지 응징 방침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라크 외교부는 유엔 사무총장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장에게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를 규탄하는 서한을 발송했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라크 외교부는 “이라크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했을 뿐 아니라 미군의 주둔 조건에도 어긋난다”며 “안보리가 이를 규탄하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압둘 카림 하심 무스타파 이라크 외교차관은 매튜 튜얼러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를 초치해 항의 입장을 전달했다. 무스타파 차관은 이 자리에서 “이라크 정부는 (미국의) 이번 행위를 규탄한다”며 “(미국은) 이라크 주권과 국제규범, 국제법을 명백히 침해했다”고 밝혔다. 무스타파 차관은 미군의 역할이 이슬람국가(IS) 소탕작전에 한정돼 있음에도 이웃 국가를 공격하는 데 이라크 영토를 악용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이란 역시 미군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데 입장을 함께하고 있다. 알리 라리자니 이란 국회의장은 의회 연설에서 “미국의 공습은 명백한 유엔 헌장 위반”이라며 “미 대통령의 잔혹한 행동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은 자위권 행사 등 일부 목적을 제외하고 모든 종류의 무력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국제법상 자위는 ‘임박한 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 명분으로 “그가 임박한 공격을 모의하고 있었다”고 밝힌 것도 공습을 국제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공격할 경우 역사적 유적지를 응징 대상으로 삼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유적 파괴는 전쟁범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미 정부 내에서 반대 여론이 확산됨에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이란은 고대 유적지 나라인 이집트보다도 많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4곳을 보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그들(이란)은 우리 국민을 죽이고 고문하고 불구로 만들고 길가에 폭탄을 설치해 우리 국민을 날려버리는데도 우리는 그들의 문화 유적지를 못 건드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날 트위터에서 “이란이 공격한다면 미국은 문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을 포함해 52곳을 이미 공격 타깃으로 설정했다”며 논란을 촉발시켰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대해 정부 내에서도 광범위한 반대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문화 유적지에 대한 고의적인 파괴 행위로는 사람들을 단결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콜린 칼은 트위터에 “문화재 유적지를 타깃으로 삼는 것은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이란도 반발했다. 이란 정보통신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IS, 히틀러, 칭기즈칸과 똑같다”면서 “트럼프는 영락없는 테러분자”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CNN은 여러 취재원을 인용해 현시점에서 미국이 이란의 문화 유적지를 공격할 것이라는 징후는 없다고 전했다.
조성은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