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숨긴 음향장비 하드케이스, 간사이공항 엑스레이 검사 안 받았다

입력 2020-01-06 04:03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일본을 탈출할 때 탑승했던 것으로 알려진 민간 제트기 ‘TC-RZA’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카를로스 곤(사진)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일본 탈출 미스터리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침묵을 지키던 일본 정부는 5일 곤 전 회장을 비판하며 출입국 검사 강화를 예고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오는 8일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예고한 상태다. 탈출 경위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민간보안업계 요원들이 곤 전 회장을 음향장비 하드케이스 2개 중 하나에 숨겨 오카사 간사이국제공항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케이스에는 호흡용 구멍도 뚫려 있고, 이동하기 쉽도록 바퀴도 달려 있었다고 한다. 곤 전 회장은 간사이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로 출국, 터키를 거쳐 레바논으로 갔다.

NHK는 비행기에 반입된 수하물이 간사이공항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개인용 비행기의 경우 운항 회사나 기장의 판단에 따라 종종 수하물 검사가 생략된다고 한다. WSJ는 곤 전 회장의 일본 탈출을 도운 민간보안업체 요원들로 미군 특수부대 출신의 마이클 테일러와 조지 안투안 자이예크를 지목했다. 테일러는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로드 구출에 참여한 인물이며, 자이예크는 테일러 소유의 보안업체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이 터키를 경유한 사실이 알려진 이후 4명의 조종사와 화물회사 관리자, 2명의 공항 노동자까지 7명이 터키 사법 당국에 체포됐다. 터키의 전세기 회사 MNG제트는 임의로 전세기 2대를 사용해 곤 전 회장의 탈출을 도운 직원을 형사 고발했다고 밝혔다. NHK는 곤 전 회장의 탈출에 관여했다가 체포된 MNG제트 간부가 “협력하지 않으면 부인과 자녀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는 협박을 당했었다고 터키 언론을 인용해 전했다.

그동안 곤 전 회장의 탈출에 침묵하던 일본 정부는 이날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모리 마사코 법무상은 “재판을 기다리던 중 극비리에 탈출한 곤 전 회장의 행동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곤 전 회장에 대한 보석 결정이 취소됐으며 인터폴이 그에 대한 수배영장을 발부했다고 덧붙였다. 도쿄지검도 “곤 전 회장의 국외 도피는 일본의 사법 절차를 무시하는 범죄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나 검찰이 곤 전 회장을 일본에 데려올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일본과 레바논이 범죄인 인도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데다 레바논 정부는 곤 전 회장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도쿄지검은 이날 “일본은 모든 피고에게 법정에서 신속하고 공평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곤 전 회장이 ‘불공정한 일본 법정’이 아닌 장외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무죄를 밝혀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을 의식한 답변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본 검찰의 장기구금 수사 등을 포함한 인질사법 관행에 대한 비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곤 전 회장이 향후 기자회견 등에서 그동안 자신이 받은 부당한 대우를 폭로할 경우 일본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질 전망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