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속세 852억 못내” 한진家, 심판 청구

입력 2020-01-05 18:37 수정 2020-01-05 21:22

범 한진가(家) 2세들이 아버지 조중훈 전 한진그룹 명예회장의 해외 비밀계좌 관련 상속세 부과 처분에 불복해 1년6개월간 과세 당국과 법적 다툼을 벌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상속인들은 2002년 11월 사망한 조 전 명예회장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의 존재를 사전에 몰랐기 때문에 부과제척기간(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과세 당국은 상속인들이 재산을 숨기기 위해 고의로 신고를 누락했다고 판단했으며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5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심판 청구 당시 생존) 등 상속인 4명(조현숙 조양호 조남호 조정호)은 2018년 7월 조 전 명예회장의 스위스 계좌 등 해외 상속분에 대한 상속세 부과가 부당하다는 취지로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다. 3남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2006년 11월 사망)의 배우자 최은영씨도 같은 내용의 심판을 청구했다. 한진가 2세인 다섯 남매 모두 불복한 것이다. 조세심판원 관계자는 “현재 과세가 정당한지 심판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2018년 4월 조 전 명예회장의 스위스 비밀계좌 재산과 프랑스 파리 부동산 등에 대해 상속세·가산세 명목으로 852억원을 부과했다. 이들 해외 상속 재산은 최은영씨가 2017년 8월 스위스 계좌에 관한 상속재산 수정 신고를 하면서 뒤늦게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후 세무조사에 나선 국세청은 스위스 비밀계좌 예치금과 프랑스 부동산 등에 관한 상속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조 전 명예회장이 사망하기 4개월 전인 2002년 7월 스위스 비밀계좌에서 5000만 달러(약 580억원)가 인출된 사실도 새로 확인했다.

국세청은 5000만 달러까지 상속 재산으로 판단해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한진그룹은 2018년 5월 보도자료를 통해 상속세 852억원 중 192억원을 납부했으며 5년간 나머지를 분납하겠다고 밝혔지만 두 달 후 불복 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쟁점은 스위스 비밀계좌에서 인출된 5000만 달러에 상속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다. 상속인들은 “스위스 계좌의 존재를 2016년 4월에야 알았고, 사전 인출된 5000만 달러도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스 비밀계좌 존재 여부를 제때 알지 못해 상속 신고를 못했으니 ‘단순 신고 누락’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세법상 부과제척기간은 10년이 적용된다. 조 전 명예회장은 2002년 11월 사망했고, 상속세 납부 의무는 6개월 뒤인 2003년 5월부터 발생했다. 부과제척기간 10년을 적용해 2013년 5월까지였던 납세기간이 이미 지났다는 주장이다.

반면 국세청은 상속인들이 비밀계좌의 존재를 알았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거액의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고 상속 재산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경우 세법상 ‘역외(해외) 거래에서 부정행위로 상속세를 포탈한 경우’에 해당돼 15년의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될 수 있다. 2018년 5월까지로 납세 가능 기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국세청은 2018년 4월 상속세를 부과했다.

조세심판원은 1월 중 결과를 내놓을 전망이다. 심판원이 한진가의 손을 들어준다면 국세청은 과세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 심판원 판단에 국세청이 불복할 수 있는 절차는 없다.

손재호 구자창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