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성추행 50대 檢 송치… 가족 회유·압박에 피해자 또 운다

입력 2020-01-06 04:04

술을 마시고 20대 조카를 성추행한 큰아버지가 구속돼 검찰에 송치됐다. 가해자는 사건 발생 직후 현행범으로 체포됐으나 피해 여성은 가족들의 회유와 부탁으로 뒤늦게 합의서를 제출했다. 전문가들은 친족 간 성폭력의 피해자가 다른 가족의 2차 가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달 19일 조카 A씨를 성추행한 혐의로 50대 B씨를 체포·구속해 같은 달 27일 검찰에 송치했다. B씨는 자신이 살던 집으로 A씨를 데려와 술을 권유해 함께 마시고 잠든 사이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는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했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는 “술 많이 먹고 잘못하는 버릇을 고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체포되자 A씨 가족들은 친척 간에 발생한 일이라며 피해자를 어르고 달랬다. 경찰은 “특히 가해자의 동생인 피해자 친아버지가 무마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했다. 일부 친척은 “B씨가 조카를 친딸처럼 잘 돌봤다”고 하기도 했다. 가족들의 계속된 설득에 A씨는 결국 경찰에 처벌을 감경해 달라는 취지의 합의서를 제출했다.

이처럼 친족 간 성폭력 사건에서 가족들이 피해자를 회유하고 압박하는 일은 흔히 일어난다. 여성가족부가 2018년 펴낸 ‘성폭력피해상담분석 및 피해자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사건 가족들은 가족 관계 단절에 대한 우려로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10대 시절 친척에게 성추행을 당한 한 여성은 부모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도 명절이나 경조사 때면 가해자를 계속 맞닥뜨려야 했다. 이 여성은 “가족들은 도리어 나에게 가족모임에 오지 말라더라”고 했다. 10년 전 친아버지에게 수년간 성추행을 당한 다른 여성도 “가족들은 범행 사실을 알면서도 아버지가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보고서는 성폭력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가족들이 외면할 경우 피해자들은 침묵한 채 더 큰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5일 “가해자 편을 드는 가족들은 피해자에게 ‘네 고소가 우리 가정을 파멸시키는 행위’라며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들이 자신을 도와주리라 기대했던 피해자는 당혹감과 우울함에 휩싸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친족 성폭력은 증가하는 추세지만 피해자들이 가족의 압박으로부터 보호할 강제적 조치는 아직 마련돼있지 않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624건이던 친족 간 성범죄 접수 건수는 4년 뒤인 2018년 858건으로 늘어났다. 친족 성범죄의 경우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의 비율)이 높아 실제로는 더 많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혜영 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가족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이들의 2차 가해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며 “이럴 경우 강제로 분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 법원 등 관계 기관들이 공동으로 나서서 가족의 정신적 학대를 막고 피해자의 안전을 확실히 담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