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을 공습 사살하면서 양국의 전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검토했던 한국 정부에도 불똥이 튈 조짐이다. 미국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적극 검토해온 정부로서는 한층 더 고조된 중동 정세 불안과 이란의 거센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6일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국방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회의를 열고 중동 정세 불안과 관련해 재외국민과 기업 보호, 호르무즈해협 안전 확보 방안 등 전방위적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호르무즈해협에 석유와 관련한 상선이 70% 이상 지나고 있기 때문에 호르무즈해협의 안전한 항행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파병과 관련해선)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지난달 12일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우리 국민과 선박을 보호하고 해양 안보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정부 안팎에서는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임무 수행 중인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해협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이달 중순 아덴만 해역에 도착해 다음달부터 강감찬함과 임무 교대를 하게 된다. 따라서 왕건함이 호르무즈해협까지 작전 범위를 넓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아덴만에서 호르무즈해협까지는 직선거리로 1800㎞ 정도로, 사흘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 군부 실세를 사살하면서 중동 정세가 급변했다. 이란은 “혹독한 보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복 조치를 공언해 양국 간 충돌이 일촉즉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요구에 따라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한다면 이란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양국의 무력 충돌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지난해 6월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던 유조선 피격 사건이 이어지자 배후로 이란을 지목한 상태다. 그러면서 지난해 7월부터 민간 선박 보호를 위한 ‘호르무즈해협 공동방위’에 한국 등 동맹국의 동참을 요구했다. 영국 호주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동참을 결정했지만 한국과 일본은 이란의 반발을 의식해 동참을 망설여 왔다. 일본의 경우 미국 주도의 호위 연합에 참여하지 않고 ‘조사·연구’ 목적의 호위함 1척만 파견키로 한 바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걸프 지역의 주요 원유 수송 경로로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등 중동의 산유국 가운데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이란군이 사실상 통제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이란이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의 하나로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청해부대의 작전구역을 호르무즈해협으로 확대하는 방식의 파병을 추진한다 해도 국회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호르무즈 파병은 ‘해적 퇴치’라는 청해부대의 애초 임무와 다르고, 중동 정세가 이전보다 훨씬 더 나빠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임성수 최승욱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