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AI 강국 되려면 수학부터

입력 2020-01-06 04:03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첨단을 수렴하는 단어는 ‘디지털’이었는데 대국 이후에는 인공지능(AI)으로 바뀌었다.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AI를 하나둘 발표했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이야기할 때 AI란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급기야 정부는 지난해 말 ‘AI 국가비전’을 발표하게 된다. 2030년까지 디지털 경쟁력을 세계 3위로 끌어올리고, AI를 통한 지능화 경제효과를 최대 455조원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삶의 질도 세계 10위로 향상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거린다. 일단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은 미국, 중국, 일본 등 경쟁해야 하는 나라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 우리나라 AI 수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AI 기업은 26곳뿐이다. 2028개인 미국의 80분의 1 수준이다. AI 대학교·대학원, 자연어처리 논문 수는 0이다. 그동안 수많은 보고서가 한국의 AI 수준에 경고음을 알려왔다.

당장 수준이 떨어진다고 비관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우수한 인재 양성이 필수적인데 그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AI 인재 육성에 가장 필요한 과목으로 수학을 꼽는다.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알고리즘이 AI 설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1년부터 대입 수능시험에는 수학 중 기하와 벡터가 빠진다. 정부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이유로 ‘어려운’ 기하와 벡터를 제외한다고 했다. 입시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AI에 국가의 미래 운명을 거는 상황에서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방향 설정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벡터는 힘의 크기와 방향을 함께 다룬다. 단순히 힘의 크기만 표현하는 ‘스칼라’와 대비된다. 벡터가 중요한 건 방향을 다루기 때문이다. 힘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향하는지를 계산하고 예측하는 것은 AI의 머신러닝에서 매우 기본적인 개념이 된다. 이게 무슨 소린지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맞다. 어렵다. 그래서 ‘수포자’(수학포기자)란 말이 나온 게 아닌가.

기하와 벡터를 안 배운 학생이 대학에서 AI 관련 교육을 받는다고 해보자. 대학에 들어가서 기하와 벡터 개념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미 배운 학생들과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외국의 날고 긴다는 인재들과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고 결국 기업이 원하는 S급 인재가 될 가능성은 작아진다.

삼성전자, 네이버, 카카오 등 AI를 다루는 국내 기업들은 지금도 S급 인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능한 인재들은 외국 기업에서도 구애를 받는데 같은 값이면 실리콘밸리 기업으로 간다는 분위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좋은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면 앞으로 인재 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고, 기업의 AI 경쟁력 강화도 어려울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구글 같은 해외 기업의 AI를 들여다 쓰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모든 산업이 플랫폼화하는 구조로 바뀌는 상황에서 AI 플랫폼을 장악당하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올해를 AI 교육 원년으로 정하고 학교에 AI를 적극 도입하기로 했다. 특성화고 10곳을 AI고나 빅데이터고로 전환하고, AI 전문교사 1000명가량을 양성해 초·중학교에 AI 전문교사 1명 이상을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AI를 활용해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게 중심인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겠다는 건 눈에 띄지 않는다.

정말 AI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정부와 교육계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AI의 본질이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를 깊이 있게 성찰하는 것이다. 답을 찾았다면 어렵더라도 그 길을 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김준엽 온라인뉴스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