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숙 (10) 낙후된 농촌서 조정역 맡아 지역사회 개발에 앞장

입력 2020-01-06 00:01
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왼쪽)가 1983년 5월 미국 국무부 초청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문화센터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낙후된 농촌과 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개발사업 ‘살기 좋은 지역사회 만들기’는 주민의 힘 키우기 활동으로 시작된다. 당시 농촌 지역 주민은 순수했다. 특히 여성들이 그랬다. 주민 힘 키우기 사업은 ‘비형식 교육훈련’으로 진행된다. 이때 강사는 촉진자 역할을 한다.

촉진자의 진행으로 주민들은 마음을 열고 자기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지역사회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다. 그동안 몰랐던 문제가 보이면 어떻게 해야 자신과 자녀의 삶이 개선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고민이 주민들을 진지한 토론으로 이끌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주민 2000~4000명 규모의 면 단위 지역을 맡아 이들 삶의 변화와 발전을 끌어내는 사업조정역은 흥미롭고 보람찼다. 교육·훈련 촉진자나 사업조정역으로 일할 때 필요한 자질이 있다. 기획력 추진력 친화력은 기본이다. 겸손 인내 성실 책임성 등 지식과 능력, 기술과 성품을 적절히 갖춰야 소임을 잘 감당할 수 있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일에 몰두해도 지치지 않는 강점을 타고났다. 일할 땐 아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로 깊이 들어가고 주민과의 만남이 진지해질 무렵, 내 역량이 열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역량 강화와 재충전 기회가 절실했다.

이때 나보다 나를 더 잘 알며 삶의 전환점마다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또 한 번 체험했다. 지인을 통해 미국 국무부 초청 프로그램(CIP)을 접한 것이다. CIP는 세계 각처의 사회복지사나 청소년 지도사, 지역개발 조정역 등 현장 전문가를 초청해 미국의 같은 분야 전문가와 함께 일하며 경험 지식 기술 등을 교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없이 귀한 배움과 훈련의 기회인 만큼 선정 과정은 길고 어렵다.

나는 CIP 4개월 과정에 선정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로 갔다. 이곳에서 비정부기구(NGO) 운영 전반과 조직운영 방법, 자원 개발·활용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배웠다. 전문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타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일의 중요성도 배웠다. 4개월간의 훈련과정을 마무리하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지역사회에 적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특히 사업장에서 어떤 자세와 태도로 지역 주민과 만날지에 대해 정리했다.

내가 배운 첫째는 ‘비차별 문화’다. 나는 그곳에서 외부인이었다. 피부색과 생김새, 능력과 언어, 사고방식도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해해주고 인내하며 수용했다. 이런 태도는 내가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됐다.

둘째로 ‘포용하는 자세’를 배웠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보여도 이들은 나를 배제하지 않았다. 무슨 일에든 나를 포함했다. 이는 자존감과 자긍심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셋째로 나를 ‘존중’해줬다. 언제든 내 의견을 물었다. 프로그램 참여 의사가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뭘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도움이 필요한 건 없는지…. 이런 참여의 기회가 이들이 나를 동등한 동료로 본다는 걸 믿게 했다. 지식이 아닌 현장 훈련을 거쳐야만 체득할 수 있는, 이들 자질을 나는 이곳에서 배웠다.

4개월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나는 농촌지역에서 가장 기대되는 변화 인자인 지역 여성의 힘을 끌어내기로 다짐했다. 1983년 여성 1인 1기 사업, 알뜰시장 등의 사업을 농촌사업장에서 펼쳐 ‘여성 힘 키우기’의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