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안에서 황교안 대표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에 실패한 데다 지지부진한 보수통합으로 총선 전망까지 어두워지면서 황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불만이 분출하고 있는 모양새다.
3선의 여상규 의원은 2일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지도부를 향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바른정당 복당파 출신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여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말도 안 되는 악법들이 날치기 통과되는 현장에서 한국당과 지도부는 매우 무기력했다”며 “황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황 대표를 겨냥해 “가장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분”이라며 “지도부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대위 체제로 가야 자유진영을 대동단결시키는 빅텐트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 불신임 여론은 3선의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과 함께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하며 불이 붙는 듯했지만, 곧바로 패스트트랙 정국이 정치권을 휩쓸면서 식어버렸다. 황 대표도 대여 투쟁을 빌미로 당 기강 잡기에 나서는 등 리더십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투쟁 정국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이 여권의 뜻대로 통과되면서 황 대표도 책임론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공수처법 통과 직후 지도부 사퇴를 언급한 공개 발언만 벌써 세 명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친박근혜계 의원도 “황 대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이 잠재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폭발하기까지는 아직 여러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중도 진영으로의 확장보다 극우 성향의 ‘태극기 보수’까지 껴안는 광범위한 ‘반문재인 연대’를 고집하는 것도 황 대표 체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다. 황 대표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보수당의 주축인 유승민 의원을 ‘유 아무개’라고 지칭하며 대통합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반면 중도 노선을 강화하자는 당내 의원들은 유승민계와의 통합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 의원은 “새보수당을 창건하려는 사람들은 주요한 통합 파트너다. 그런 사람들을 우대해 자유주의 기치 아래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황 대표가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 중진 의원도 “황 대표가 통합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하지 않았나. 필요하다면 당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당대표 리더십에 빨간불이 켜지자 황 대표 측근들은 방어에 나섰다. 친박계로 황 대표 취임 후 첫 사무총장을 지냈던 한선교 의원은 이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황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이라고 불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황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김도읍 의원도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 실패의 책임을 지겠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황 대표는 당내에서 책임론이 제기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여러 방법이 있다”며 “무거운 책임의식을 가지고 당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보수통합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탈당파 인사들의 복당을 전원 허용했다.
한편 한국당은 비례 정당의 명칭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정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했다. 한국당은 이달 내로 창당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심우삼 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