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이어 보수통합도 무기력… 황교안 당 안팎서 퇴진론

입력 2020-01-03 04:06
자유한국당 황교안(앞줄 가운데) 대표와 심재철(왼쪽 두 번째) 원내대표 등이 2일 국회 본관 앞에서 국민들을 향해 세배하고 있다. 황 대표는 “반민주 악법(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막지 못했다”며 “국민들께 걱정만 더해 드려서 한없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자유한국당 안에서 황교안 대표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에 실패한 데다 지지부진한 보수통합으로 총선 전망까지 어두워지면서 황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불만이 분출하고 있는 모양새다.

3선의 여상규 의원은 2일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지도부를 향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바른정당 복당파 출신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여 의원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말도 안 되는 악법들이 날치기 통과되는 현장에서 한국당과 지도부는 매우 무기력했다”며 “황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황 대표를 겨냥해 “가장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할 분”이라며 “지도부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대위 체제로 가야 자유진영을 대동단결시키는 빅텐트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여상규 의원. 최종학 선임기자

황 대표 불신임 여론은 3선의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과 함께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하며 불이 붙는 듯했지만, 곧바로 패스트트랙 정국이 정치권을 휩쓸면서 식어버렸다. 황 대표도 대여 투쟁을 빌미로 당 기강 잡기에 나서는 등 리더십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투쟁 정국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이 여권의 뜻대로 통과되면서 황 대표도 책임론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공수처법 통과 직후 지도부 사퇴를 언급한 공개 발언만 벌써 세 명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친박근혜계 의원도 “황 대표 체제에 대한 의구심이 잠재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폭발하기까지는 아직 여러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중도 진영으로의 확장보다 극우 성향의 ‘태극기 보수’까지 껴안는 광범위한 ‘반문재인 연대’를 고집하는 것도 황 대표 체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다. 황 대표는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보수당의 주축인 유승민 의원을 ‘유 아무개’라고 지칭하며 대통합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반면 중도 노선을 강화하자는 당내 의원들은 유승민계와의 통합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 의원은 “새보수당을 창건하려는 사람들은 주요한 통합 파트너다. 그런 사람들을 우대해 자유주의 기치 아래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황 대표가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 중진 의원도 “황 대표가 통합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하지 않았나. 필요하다면 당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선교 의원. 최종학 선임기자

당대표 리더십에 빨간불이 켜지자 황 대표 측근들은 방어에 나섰다. 친박계로 황 대표 취임 후 첫 사무총장을 지냈던 한선교 의원은 이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황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이라고 불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황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김도읍 의원도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 실패의 책임을 지겠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황 대표는 당내에서 책임론이 제기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여러 방법이 있다”며 “무거운 책임의식을 가지고 당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보수통합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탈당파 인사들의 복당을 전원 허용했다.

한편 한국당은 비례 정당의 명칭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정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했다. 한국당은 이달 내로 창당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심우삼 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