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마주칠 수는 없지만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끌림이 있다.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없지만 단단한 말투가 주는 울림이 있다. “등급이 아니라 인간으로 대우받길 원한다”는 정아영(33)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대표를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나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서 도입된 ‘종합조사표’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정 대표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차별을 알았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었다. 기다리는 대신 학교를 바꾸기로 했다. 장애 학생 전담 멘토 인력이 확보됐고, 교내 편의 시설도 신설됐다. 괜히 고마웠다.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인심 쓰듯 내주는 사회에 익숙해서였을까. 정 대표는 자신부터 달라지기로 했다.
“우리를 봐달라”며 목소리를 낸 지 어느덧 13년. 현재 그는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고 있다. 장애인을 1~6등급으로 구분하는 장애등급제는 이미 지난해 7월 폐지됐다. 하지만 등급이 사라진 건 아니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중증)’과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경증)’으로 단순화됐을 뿐이다.
기준을 나누는 ‘종합조사표’도 문제였다. 시각장애인이 조사표를 통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밥을 먹을 수 있나’였다. 정 대표는 “혼자서 밥을 먹을 수는 있지만 반찬을 구별할 수는 없다”며 “이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건가, 없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정 대표는 ‘옷을 갈아입을 수 있나’라고 묻는 대신 ‘양말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할 수 있나’라고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해야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의 요청으로 추가된 문항도 있다. ‘계약서 등 법적 책임이 따르는 문서를 직접 처리할 수 있나’ ‘긴급상황 시 타인의 인상착의 등을 인식할 수 있나’ 등은 지난해 10월 추가됐다.
정 대표는 “장애인 개인별 특성과 욕구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환영한다”면서도 “장애인의 입장에서 조사표 문항을 정확하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권리 보장은 장애계를 제대로 진단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정 대표의 생각이다. 특히 ‘여성 학습권’에 방점을 찍었다. 장애인 사회는 성차별이 더욱 심각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교육 수준과 경제활동참가율, 소득 수준 등 모든 부분에서 장애 여성은 남성의 절반 수준이다. 이 통계는 10년째 제자리다. 정 대표는 교육의 부재가 낳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특히 여성 장애인의 욕구와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