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8개월을 끌며 미적대던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수사 결과를 갑자기 내놓았다.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25∼26일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안건신속처리제도) 법안 접수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국회 의안과 사무실과 회의장 등을 점거하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측과 충돌해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남긴 바 있다. 당시 한국당 의원들은 다른 당 의원을 의원실에 감금하기도 했다. 서울남부지검은 2일 브리핑을 열고 한국당 황교안 대표 및 의원 23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국회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 또는 약식기소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 5명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또는 약식기소했다고 말했다. 당초 고소·고발된 의원 109명 중 나머지는 기소유예 또는 혐의 없음 처분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 대다수는 출석을 요구받고도 응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 사건은 물증(국회 CCTV와 언론사 영상, 국회방송)이 있었기 때문에 소환 없이 기소해도 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회를 폭력으로 짓밟아 난장판을 만든 장본인들에 대한 기소는 당연하다. 몸싸움과 폭력이 되풀이되는 동물국회를 없애고자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을 도입했는데 그게 무용지물이 된 최악의 사태였다.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한 관련자들은 온 국민을 실망시킨 대가를 엄중히 치러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19조에 따르면 국회법 제166조(국회 회의 방해죄)의 죄를 범한 자로서 500만원 이상 벌금형을 확정받으면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이 경우 4월 총선에도 영향을 끼치므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여기서 짚어야 할 부분은 검찰의 발표 시점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임명된 당일 급작스레 이뤄졌다. 줄곧 공수처를 반대해준 제1야당을 밀어줄 이유가 없어지고 검찰을 관할하는 상관마저 부임하자 부랴부랴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뒷북 기소’ ‘보복성 기소’라고 문제 삼는 이유다. 반면 한국당이 그간 두둔해온 검찰을 향해 청와대 권력에 굴복한 ‘하명 기소’ ‘야당 죽이기’라며 반발하고 나섰으나 한국당으로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사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무더기 기소는 당연하지만
입력 2020-01-03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