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죄인이 되는 길과 의인이 되는 비결이 기록돼 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육체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아담은 하나님께 하늘과 땅의 권세를 위임받고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지으며 에덴의 경작권을 지녔다. 그런 그가 어쩌다 모든 권세를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사단의 말을 듣고 믿고 행했기 때문이다.
사단은 네 가지 거짓말로 아담을 유혹했다. 창세기 3장 4~6절 말씀을 보면 그 내용이 나온다. 첫 번째 거짓말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는 것이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생하도록 지음 받았지만, 사단의 거짓말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그만 타락하고 말았다. 그 후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그 말에 속아 죽지 않을 것처럼 흥청망청 살아간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어도 죽음이라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 번째 거짓말은 “눈이 밝아진다”(창 3:7)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눈, 영적인 눈은 어두워졌다. 영적인 눈은 언제 열리는가. 성경은 성령을 받을 때 열린다고 말씀한다.(엡 1:17~19)
세 번째 거짓말은 “하나님 같이 되어 선악을 판단한다”(창 3:5)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가도 일진이 있고 그중에 짱이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폭력을 써서라도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다. 하나님 자리에 올라서 수없이 판단하는데, 이것은 수많은 육체적 죄의 열매를 만들어낸다.
네 번째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다. 먹고 살만하고 돈이 생기면 백화점 가서 삶의 질을 높이고 싶어 한다. 고급 승용차와 아파트, 명품으로 치장해 자신의 이미지를 치장한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탐스러운 것을 쫓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사탄이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르는 게 인간의 인생이다.
우리는 죄가 나오는 근본 ‘샘’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창세기 3장 3~5절이다. 목회자들이 주일마다 강단에서 죄짓지 말자고 강조한다. 하지만 변화되지 않는 성도의 모습에 낙담하고 종교인을 양산하다가 세월을 허비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죄의 근본 샘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단의 네 가지 거짓말을 분별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원죄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가정이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 3:16)
우리는 육체적 저주뿐 아니라 영적 저주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말씀은 ‘여자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릴 것’이라는 것이다. 아내가 단순한 여자에 그치고, 남편이 단순한 남자에 그치면 영원히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남편과 아내는 76억명 중 한 명이 아니다.(엡 5:22~25)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
남편이 말씀 앞에 자아를 내려놓지 않으면 다스리는 저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다스리는 저주에 벗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가정은 행복할 수 없다. 아내도 남편에게 절대 복종할 수 없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경외’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 삶의 질서이다.
죄로 무너진 가정에 그다음 단계로 찾아오는 것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예배 실패다. 가인은 다툼과 시기, 질투하다가 그만 예배를 상실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창 4:3)
세월이라는 것은 일직선으로 지나는 것이 아니다. 원뜻은 ‘세월이 차곡차곡 쌓였다’는 의미이다. 선도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고 악도 차곡차곡 쌓는다. 기도도 차곡차곡 쌓여 하나님의 응답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세월은 일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가인의 예배도 오랫동안 하나님이 보시고 차곡차곡 쌓으셨다. 그리고 예배에 정함이 없으니 받지 않으셨다.
예배에 실패한 사람은 놋 땅에 가서 성을 쌓았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제단을 쌓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예배에 실패하자 불안한 마음에 육적인 것을 쌓기 시작한다. 후손의 삶도 엉망이었다. 라멕은 음란을 퍼뜨리고, 유발은 유행가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두발가인은 전쟁을 위해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노아의 홍수 때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창세기 4장에서는 육신의 정욕으로 가인의 후손들이 예배에 실패한 장면이 등장한다. 창세기 6장에서는 셋의 후손들이 안목의 정욕에 빠져 ‘사람의 딸들’에게 마음을 뺏겨 예배에 실패한다. 그리고 창세기 11장에서는 이생의 자랑으로 인해 함의 후손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고 예배에 실패한다.
그러나 성도는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다. 죄악된 세상에 맞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죄에 빠진 영혼을 구원해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영적 군사다. 그렇다면 죄악 된 세상에서 수많은 영혼에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삶의 변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에게 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