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비난하며 핵무기·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유예) 철회를 시사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전략무기’로 ‘충격적인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미국의 향후 대응에 따라 북한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새해 한반도 정세가 한층 험악해졌으나 비핵화 협상의 판 자체는 아직 깨지지 않은 셈이다.
1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8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노동당 전원회의를 마무리하며 강경한 대미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핵·ICBM 실험을 중지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등 ‘선제적 중대 조치들’을 취했음에도 미국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대북 제재를 추가한 것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켜주는 대방(상대방)도 없는 공약에 더 이상 매어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며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의 강도적 행위로 우리 외부 환경이 (핵·경제) 병진의 길을 걸을 때나 지금이 달라진 것이 없다”며 “세상은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전략무기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강도적 태도를 취하고 있어 조·미(북·미) 간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재 장기화 국면 타개책으로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를 제시했다. 그는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 번영해 나라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혁명 신념”이라며 “난관을 오직 자력갱생의 힘으로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던 자신의 2014년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다만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지 않으면서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했고 “우리의 (핵)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 미국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는 발언이다. 이번에 김 위원장이 강경 노선으로의 회귀를 시사함에 따라 북·미 대치 국면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졌지만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은 남아 있는 셈이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도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중단을 선언하지 않은 것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북한이 ‘협상 결렬’이라는 패는 손에 쥐고 있으면서 공은 미국에 넘긴 것”이라며 “올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선 레이스 등을 감안해 북한이 나름대로 수위 조절을 했다”고 분석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