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탈주극.”
카를로스 곤 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이 31일(현지시간) 일본을 빠져나가 레바논에 있다고 밝히면서 탈주 과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허술한 출입국 감시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일본은 해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곤 전 회장은 보수 축소 신고와 회사자금 유용 등의 혐의로 2018년 11월 체포됐다. 이후 보석 석방과 재체포, 2차 보석 석방을 거쳐 가택연금 상태였다. 출국이 금지된 그는 소지하고 있던 레바논과 브라질, 프랑스 여권도 변호인에게 제출했다. 브라질의 레바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레바논에서 자라고 프랑스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그는 세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
가택연금 중이었던 그의 탈주 방법은 현지 언론 등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곤 전 회장 도주 작전은 아내인 캐럴의 주도 아래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됐고, 크리스마스 파티 도중 이뤄졌다.
도쿄 자택에 머물던 곤 전 회장은 크리스마스 파티에 연주자들을 초청했는데 악단을 가장한 민간 경비업체 사람들이 그를 대형 악기 상자에 숨겨 자택 밖으로 빼냈다. 곤 전 회장은 수일간 숨어 있다가 지난 29일 오후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향했다. 30일 이스탄불에서 아내 캐럴과 만난 곤 전 회장은 터키 국적 항공사의 소형 제트기로 바꿔 타고 레바논에 도착했다.
일본 언론은 “자가용 비행기로 출국해도 출국 수속을 밟아야 한다”면서 “곤 전 회장이 출국할 때 신분을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외교관 등의 소지품에 대해 관세 검사가 면제되는 점을 이용해 악기 상자에 숨은 채 전용기에 실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터키에서 레바논으로 입국할 때는 프랑스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곤 전 회장 재판을 관할하는 도쿄지방재판소(법원)는 보석 조건을 위반한 곤 전 회장의 보석을 취소하고 총 15억엔(약 150억원)의 보석보증금을 몰수했다. 일본 정부는 곤 전 회장의 신병 인도를 레바논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하지만 레바논과 일본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고 레바논 정부는 곤 전 회장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