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시민들 소망 들어보니… “엄마와 생일날 놀기” “딸 다시 일어나길”

입력 2020-01-02 04:05 수정 2020-01-03 14:20
경자년(庚子年)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곳곳에서 만난 시민들이 저마다 올해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을 말하고 있다. 이들의 소망은 건강, 취업, 성적 등 다양했다.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도 듬뿍 느껴졌다.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시내에서 만난 시민들은 올해 이뤄졌으면 하는 각양각색의 작은 소망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갓 영화계에 데뷔한 독립영화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세상에 알려지길 바랐고 아픈 부모를 병간호해온 자식들은 가족의 건강을 제일로 꼽았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하루하루 장사가 잘되기를 기도했으며 어르신들은 친구들이 더 이상 세상을 떠나지 않기를 소망했다.

임용고시 준비생인 방보현(27·여)씨는 새해 첫날부터 스터디를 하기 위해 노량진 학원가를 찾았다. 지난해 1차 시험 통과 이후 면접을 준비하는 방씨에게 합격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방씨는 “시험을 준비하는데 어머니가 갑작스레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통원치료를 받는 어머니를 간호하며 공부를 병행하려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딸의 간호 덕에 어머니는 사흘 전 항암치료를 모두 마치고 회복 중이다. 방씨는 “어머니의 건강 회복과 시험 합격이 모두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이 고질적인 사회문제가 돼버린 팍팍한 현실에도 청년들은 지치지 않고 꿈을 좇았다. 지난해 단편 독립영화로 데뷔한 영화감독 이모(26)씨는 “담배 심부름부터 청소까지 온갖 잡일을 하면서 꿈꿔왔던 감독이 됐다. 이제부터는 내가 찍은 영화를 관객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박현영(19)양은 꿈꾸는 경찰이 되기 위해 매일 11시간 넘게 형법 등을 공부 중이다. 박양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순경 공채를 준비해왔다. 100m 달리기와 윗몸일으키기도 확실히 대비해 만점을 받겠다”고 했다. 대학생 유튜버인 김성준(27)씨는 “소통 능력을 길러 더 많은 사람과 공감대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태어나서 두 번째 쥐띠 해를 맞은 초등학생 석모(12)군은 어머니와 생일을 함께 보내는 것이 올해 소원이다. 어머니는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러 나가 석군과 놀아줄 시간이 많지 않다. 석군은 “맨날 혼자 아동센터에서 노는데 올해 생일에는 어머니가 일을 쉬고 같이 어디든 놀러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석군은 이날도 집 앞 어린이공원에서 동갑내기 친구들과 어울렸다.

불경기로 한동안 파리만 날렸던 서울 구로구 남구로시장에는 신정을 맞아 장을 보러 온 시민들로 오랜만에 북적였다. 수십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은 지난해보다 장사가 잘되길 바랐다. 한 그릇에 5000원짜리 선지해장국을 파는 이금옥(78) 할머니는 “한 달 일해 100만원 손에 쥐면 ‘대박’이라고 할 정도로 장사가 잘 안된다”며 “조금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어묵과 옥수수, 달걀도 곁들여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너편 구로시장에서 50년 넘게 바지락·고추 장사를 한 천분옥(83) 할머니는 “시장을 찾는 여러 사람을 만나며 재밌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역 뒤편에 위치한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은 가족처럼 지내는 이웃들과 신년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주로 60, 70대 노인들인 이들은 올해에도 무탈히 지낼 수 있길 소망했다. 이춘석(60)씨는 “1년에 많으면 40명 가까이 동네 이웃들이 세상을 떠난다”며 “한둘밖에 남지 않은 친구들이 더 이상 죽지 않는 것이 새해 소망”이라고 밝혔다. 다른 주민 김정호(60)씨는 “큰 재산보다 쪽방촌 주민들끼리 끈끈하고 정감 있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쪽방촌에서 젊은 축인 박동국(48)씨는 “지금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생활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꼭 취업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의 공동 샤워시설인 동자동 희망나눔센터에는 새해를 맞아 깔끔하게 목욕을 하려는 노인들이 줄을 섰다.

새해 첫날에도 병원에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이들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서울성모병원에서 급성 백혈병으로 입원한 딸을 3년째 간호하는 조경희(76) 할머니의 손에는 새 옷가지와 반찬통이 들려 있었다. 조 할머니는 “우리 딸 건강해지는 모습 보려고 최선을 다해서 버티고 있다”며 “딸이 예전처럼 건강히 걸어만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원한 남편이 갑작스레 의식을 잃어 급히 병원을 찾은 김춘희(82) 할머니도 “다른 것 다 필요 없다. 바깥양반이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국내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외국인들은 새로운 10년을 맞아 한국 사회에서 변화됐으면 하는 점을 조심스레 밝혔다. 서울 중구 몽골타운에서 몽골 카페를 운영하는 돌마(47)씨는 “20년 넘게 한국에 거주했는데도 사업할 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이 많다”며 “비자 문제를 유연하게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몽골인 홀릉(33)씨는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홀릉씨는 “외국인들은 친척들이 없어 맞벌이를 하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 어린이집에 지원할 때도 내국인에 비해 점수가 낮게 책정되는 등 양육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글·사진=방극렬 조효석 박구인 황윤태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