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로 월급 받는 나라… 은행권, 캄보디아 핀테크 쟁탈전

입력 2020-01-02 04:08

지난해 초에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김선규 우리은행 여신지원그룹 집행 부행장을 캄보디아 우리은행 법인장으로 내정했었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지(奧地)’에 부행장급 임원을 법인장으로 보내는 인사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캄보디아는 소액대출을 키우면 ‘캐시 카우(cash cow)’로 성장할 시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여신전문가를 선봉장으로 보내 현지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속셈이었다.

‘글로벌 먹거리’에 굶주린 국내 은행권이 캄보디아에서 앞 다퉈 치열한 ‘깃발꽂기’를 벌이고 있다. 캄보디아는 소액금융 수요가 꾸준한 데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 모바일 결제시장 확장 속도가 가파르다. 핀테크 성장세도 뜨겁다. 캄보디아중앙은행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화폐(CBDC) ‘바콩(bakong)’을 내놓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6일 캄보디아 시장 확장을 위한 닻을 올렸다. 캄보디아 최대 소액대출금융회사 ‘프라삭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지분 70%를 인수했다. 우리은행의 ‘맞불’도 만만치 않다. 2014년과 2018년에 우리파이낸스캄보디아와 WB파이낸스를 인수했는데, 오는 6일 합병을 앞두고 ‘거대 은행’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파이낸스캄보디아는 소액여신전문 금융회사, WB파이낸스는 저축은행이다. 두 회사의 지난해 3분기 말 누적 순이익은 127억7200만원이다.

은행권이 소액금융을 집중 공략하는 이면에는 캄보디아의 특수한 환경이 자리한다. 캄보디아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내수경제를 이끌고 있다. 김응철 우리은행 기업영업본부장은 1일 “마을 촌장을 중심으로 5~6명이 연대보증을 서는 집단대출이 많아 전체 은행 연체율도 0.5%밖에 되지 않는 특이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상당한 잠재력도 큰 매력이다. 캄보디아는 1600만명의 인구에 연 7%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청년층 인구가 중심이라 구매력도 막강하다.

특히 국내 은행권의 핀테크 노하우를 수혈하기 적합하다. 인구 대비 휴대전화 보유비율이 2017년 기준 118%에 이른다. 2009년 모바일 송금업체인 ‘윙(Wing)’이 생긴 이후 모바일 충전식 결제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윙을 통한 모바일 송금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50%에 달할 정도다. 노동자들도 모바일로 급여를 받고, 공과금 납부를 모바일로 한다. 낙후된 인프라로 은행 계좌 보유율이 고작 22%라는 취약점을 모바일 결제로 상쇄하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캄보디아 모바일 결제시장에 초점을 맞춘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캄보디아에서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TADA)’를 운영하는 엠블(MVL)과 함께 전자지갑 서비스를 출시했다. 타다에 탑승하는 고객이 신한은행에서 운용하는 전자지갑으로 자동결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정부가 핀테크 산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도 반갑다. 캄보디아는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 ‘바콩’을 선보였다. 캄보디아의 주요 시중은행 8곳에 이어 말레이시아 시중은행들과 모바일로 바콩 거래가 가능하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현지 핀테크 업체끼리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은행 매출 규모를 키우려면 신용대출과 기업대출 확대 방안도 반드시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