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여러 결심을 하게 마련이다.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금주와 금연에 도전한다. 그럼에도 결심이 오래가기 힘든 이유는 이런 결심이 오랜 습관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나쁜 습관은 중단하고 좋은 습관을 익히려는 의지를 주변 사람에게 선포하며 비장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게 해도 습관을 바꾸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습관이 형성되려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며 이렇게 말씀한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새로운 삶을 갈망하던 아브라함이 먼저 할 일은 바로 익숙한 삶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해 과감히 길을 나서지만,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익숙지 않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올바른 방향인지 자꾸 의심하며 궤도를 수정한다. 이런 기복과 좌충우돌을 겪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는 ‘믿음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품격을 보여준다.
몇 해 전 다이어트에 성공한 적이 있다. 석 달 정도 식이요법을 하며 열심히 운동해서 10㎏ 이상을 감량해 참 뿌듯했었다. 그런데 웬걸, 몇달 후 다시 예전 모습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스스로 이렇게 안위했다. “괜찮아, 맘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뺄 수 있어.” 이후에도 몇 번씩 다이어트를 시도했으나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탄수화물 위주로 형성된 식습관이다. 나는 깨달았다. 다이어트는 결심과 의지를 넘어 습관의 혁명이 동반돼야 함을 말이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를 떠나듯, 내가 사랑하는 칼국수와 자장면, 빵을 잠시 줄이는 것이 아니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운동도 그렇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기실 새로운 습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새 습관을 들이려면 옛 습관 가운데 일부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운동을 시작하면 평소 안 쓰는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온몸이 욱신거린다. 새벽기도도 그렇다. 새벽에 기도하고 싶다면 밤을 지배하던 습관을 떠나야 한다. 저녁형 인간에게 밤은 친교의 즐거움이 고조되는 시간이다. 고요한 사색도 가능해 집중력이 강화되는 효과도 있다. 이런 생활에 익숙한 올빼미족에게 아침잠을 줄이는 건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부작용이 따른다. 그럼에도 새벽기도를 하려거든 밤의 습관을 포기해야 한다. 이렇듯 새로운 습관의 형성에는 절대 가볍지 않은 진통이 따른다.
그리스도인에게 거듭남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를 습관의 혁명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이전에 나란 존재를 형성해 온 오랜 삶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습관을 만들고자 하는 첫걸음이다. 오랜 습관이 무조건 악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싸잡아 말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고 나와 동행해온 친구 같은 존재니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을 기대하는 지금의 나에겐 이제 새로운 친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진정한 삶의 변화가 이뤄진다.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친구가 정말 맘에 들고 절실하다면, 익숙해진 습관을 수정하는 일에 온몸이 기꺼이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내게 습관의 변화는 늘 그렇게 새로운 만남과 동행했던 것 같다.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떠나야 할 옛 습관과 만나야 할 새 습관 사이를 서성인다. 습관의 정착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변화는 늘 ‘바로 지금’이란 순간적 결단과 함께 시작된다. 새해가 된다는 건 그저 인간이 약속한 시간적 기호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새해는 존재적 변화를 위한 심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다. 마음의 결정을 넘어 꼼꼼하게 내 삶의 패턴을 점검하며 새로운 습관의 혁명을 일으킬 그 첫걸음을 시작해보자.
윤영훈(성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