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마지막 날 KTX 해고 승무원들이 4973일 만에 모두 복직을 마쳤다. 정규직 전환 대신 들어온 자회사 이적 제안을 거부하다 2006년 5월 21일 해고됐던 승무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온 것이다.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전원 복직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31일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서 해고 승무원들의 전원 복직을 기념하는 작은 행사가 열렸다. 이날 총 50명이 철도공사에 복직했고, 10여년간 이어져 온 외부 투쟁은 막을 내렸다.
행사에는 복직을 마친 해고 승무원 70여명이 참가했다. 재회의 기쁨에 가득 찬 이들은 곳곳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그간의 투쟁 영상을 보면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만큼 서로에게 생긴 오해들을 속 시원히 터놓는 자리도 마련됐다.
해고된 동료들을 이끌어왔던 김승하(40) 전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조금은 홀가분하다는 듯 밝게 웃었다. 그는 “승무원들은 모두 역무원으로 복직했고, KTX열차승무지부는 자연스레 해체됐다”며 “‘김 전 지부장’ 호칭은 곧 해고 승무원의 전원 복직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날 복직한 최정현(39)씨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다른 직장에서 10년간 일하다 복직했다. 최씨는 “거의 5000일 가까이 해고 승무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희생하며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며 “이곳에 몸을 담고 일해야 제대로 매듭을 짓는 것이라는 생각에 복직했다”고 말했다.
강혜련(40)씨는 “처음엔 100일, 300일, 1년 숫자를 세다가 너무 길어지니까 숫자 개념이 없어졌었다”며 “우리가 싸웠던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가장 마지막에 복직한 만큼 더 열심히 해서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이들은 철도공사 측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KTX 승무원이 됐다. 하지만 2006년 철도공사가 자회사 전환 방침을 내세웠다. 그해 5월 자회사 이적을 거부한 승무원 280명은 해고됐다. 2010년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통해 1·2심에서 승소했으나, 2015년 대법원은 이 판결을 파기하고 승무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한 승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승무원들은 지난해 7월 공사 측과 경력직 특별채용에 합의했다. 해고된 280명 중 철도공사나 자회사 취업 경력이 있는 이들을 제외한 180명은 복직 대상이 됐다. 이 중 140명이 복직했다. 40명은 해고 기간 다른 직장을 찾는 등 각자 제 갈 길을 떠났다.
김 전 지부장은 이번 행사를 열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 복직하는 순간까지 합의안이 틀어질까봐 마음을 졸인 분들이 많았다”며 “2019년 내에 전부 복직시키기로 했는데, 결국 마지막 날 복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복직한 강영순(40)씨는 “여전히 힘들게 싸우시는 분들이 많다. 조심스럽지만 우리 승무원들의 소식을 듣고 희망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복직은 2018년 11월과 2019년 7월 그리고 이날까지 총 세 차례로 나뉘어 진행됐다. 역무원으로 복직한 뒤 승무원으로 전환 배치하는 조건이다. 이들은 “승무원을 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기차에 오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김 전 지부장은 “새해에는 대법원 판결 당시 우리 곁을 떠난 ‘그 친구’를 찾아가 인사하고 싶다”고 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