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천사’ 성금 절도범 검거… 해피엔딩엔 ‘두 장의 메모’ 있었다

입력 2020-01-01 04:06
‘얼굴 없는 천사’ 성금을 훔쳤다 검거된 용의자 2명이 30일 얼굴을 가린 채 전북 전주완산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도난당했던 전북 전주 ‘얼굴없는 천사’의 기부금이 하룻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전주시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아찔했던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 데에는 두 장의 메모가 있었다.

첫 번째 주민의 메모였다. 31일 전주완산경찰서에 따르면 노송동주민센터의 도난 신고가 접수된 것은 전날 오전 10시40분쯤. 경찰은 급히 출동해 탐문 수사를 펴던 중 한 주민으로부터 ‘수상한’ 차량 번호를 적은 메모를 한 장 건네받았다.

이 주민은 낯선 차량이 지난주에 이어 이날도 주차돼 있는 데다 번호판이 흰색 물체로 가려져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겨 번호를 적었다. 결정적 제보였다. 덕분에 경찰은 CCTV를 통해 용의차량을 확인하고 충남경찰청과 공조해 용의자들을 검거했다. 사건 발생 4시간 30여분만이었다. 자칫했으면 큰 충격과 상처로 남았을 사건이 주민의 ‘매서운 눈’으로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세요.” 또 다른 메모는 얼굴없는 천사가 상자에 현금과 함께 넣어둔 글귀였다.

기부자는 2000년부터 해마다 적게는 100만원, 많게는 8000여만원의 성금을 몰래 놓고 가면서 “어려웃 이웃을 위해 써달라”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의 덕담을 적은 종이를 같이 넣었다.

성금 액수보다 더 큼직한 천사 가족의 따스한 마음을 담은 글귀였다. 얼굴없는 천사의 따스한 음성을 절도 용의자들을 바로 붙잡고 성금 상자를 그대로 회수하면서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남몰래 20년째 이어진 얼굴없는 천사의 사랑은 원래대로 온전하게 전해지게 됐다. 한때 충격에 빠졌던 전주시민들도 다시 한해를 훈훈하게 마무리 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이 회수한 성금 상자에는 5만원권 지폐 100장씩을 묶은 다발 12개와 저금통에 든 동전 등 모두 6016만 2310원이 들어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충남에 사는 용의자들은 치밀한 사전 계획을 세운뒤 원정 범행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 선후배 사이인 A씨(35)와 B씨(34)는 전주 천사의 성금을 훔치기로 마음먹고 며칠간 잠복 대기한 뒤 30일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컴퓨터 수리점을 한 곳 더 열기 위해 기부금을 훔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