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스탁 페스티벌은 1969년 8월 15~17일 처음 열렸다. 우드스탁 주최자들은 장소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어느 도시도 히피들이 떼로 모여 음악 축제를 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안전 문제에다 화장실도 풀어야 할 숙제였다. 5만명 이하만 입장시킨다는 조건으로 미국 뉴욕에서 북쪽으로 160㎞ 떨어진 베델에서 첫 우드스탁이 열렸다. 베델은 이후 우드스탁의 성지가 됐다. 첫 우드스탁 광고 포스터의 카피는 ‘3일간의 평화와 음악’이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미국 젊은이들은 록 음악을 매개로 평화와 사랑을 노래했다. 주최 측과 베델 공무원들의 약속은 깨졌다. 사흘 동안 40만명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50년이 훌쩍 지난 2019년 10월 초, 미국 애리조나주 골든밸리에서는 ‘트럼프스탁’이라는 이름의 정치 집회가 사흘 동안 열렸다. 우드스탁에서 ‘스탁’이라는 이름과 사흘 동안 진행한다는 아이디어만 빌려왔을 뿐 내용은 정반대였다. 백인 우월주의자 등 극우세력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찬양·지지 집회였던 것이다. 100여명이 참석한 소규모 집회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8일자 기사에서 트럼프스탁에 참가한 극우세력의 모습을 자세히 소개했다. 트럼프스탁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애국자’라고 진실로 믿는다. 테러 위협을 가해 체포되기도 했던 가이 데커는 “사람들은 백인 우월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붙이지만 우리는 애국자”라고 말했다. 이들이 신봉하는 것은 음모론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악을 숭배하며, 어린이 성매매 불법거래에 관여하고 있다는 주장이 퍼지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당의 큰손 기부자인 유대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깊숙한 곳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비밀 정부 조직이 있다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그림자 정부) 음모론도 있다.
근거 없는 주장을 확산시키는 유명 인사들도 있다. 폭스뉴스 진행자 제시 워터스가 대표적이다. 워터스는 최근 음모론을 주제로 한 대학교수와의 방송 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비밀리에 그의 선거운동을 감시하고, 내부적으로 그에게 공격을 가하는 ‘딥 스테이트’와 싸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해 논란을 야기했다. 음모론자들은 그의 발언을 퍼 날랐다. 민주당을 악마숭배자로 보니 대화와 타협은 기대할 수 없다. 한 남성은 트럼프스탁에서 “나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반역죄로 줄에 매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연설했다. 트럼프스탁이 열린 애리조나주는 멕시코와 국경이 맞닿아 있다. 이들은 몇 십년 뒤 히스패닉 인구가 애리조나주에서 백인들을 추월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정치인들은 이런 분위기를 악용한다. 애리조나주의 법 집행관이었던 조지프 아파이오는 서류가 없는 이민자들을 강제 구금시켰다가 재판 과정에서 법정모독죄를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8월 그런 아파이오를 사면했다. 더그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찍은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듀시 주지사는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잡아뗐다. 트럼프스탁 참석자들은 이제는 비판받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NYT에 전했다. 이들은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자신들이 트럼프를 지킨다고 믿는다. 마크 빌라트라는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낮아질 때를 대비해 총기를 비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내전과 다름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나는 폭력을 원치 않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리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스탁 참석자들의 모습은 한국 정치의 양극단에서 활개치는 이들과 비슷하다. 진보·보수 할 것 없이 꼬리가 몸통을 지배하는 ‘왝 더 독(Wag the dog)’ 현상에 시달리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올해 4월 총선은 누가 먼저 내부의 극단주의와 결별하는가 하는 싸움이 될 것 같다. ‘침묵하는 다수’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