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년(庚子年)을 경건하게 맞는다. 어느 새해치고 경건하게 맞지 않는 새해는 없다. 1년마다 한 해의 시작에 의미를 두는 건 늘 새로운 희망을 품고 다지기 때문이다. 때때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희망이 깊은 절망과 회한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희망이 절망과 회한으로 바뀐 이유를 성찰하고 인내하며 다시 새로운 희망으로 바꿔 나가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잠시 정체했거나 후퇴한 것 같지만, 역사는 그래서 조금씩 진전하는 것이다. 절망과 회한을 희망으로 되돌려놓는 건 우리 모두에게 회복탄력성이 있어서다. 회복탄력성을 다지고 또 다져야 하는데 우리가 게을러져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다.
지난해 우리는 거대한 편 가르기 싸움을 겪었다. 그것은 전 법무부 장관 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조국이라는 기제(機制)를 통해 수십년간 이 나라 정치·사회에 누적돼 온 온갖 구조적 모순과 편향된 생각들이 한꺼번에 터진 정치·사회적 현상이다. 그 사태가 나라를 두 쪽으로 갈랐다고들 한다. 아니다. 세 쪽으로 갈라진 것이다. 광화문이나 서초동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중도층 목소리가 그것이다. 성찰하고 침묵하며 상황을 주시했던 그들이 이 사회의 다수이고 진짜 주인이다. 양 극단은 정치 집단을 통해, 언론과 SNS를 통해, 거리를 휩쓰는 다중의 위협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실체보다 크게 분식했을 뿐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 이 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횡행하고 있다. 의도적인 가짜뉴스 생산과 퍼나르기는 각 분야에서 패거리 싸움에 좋은 무기로 이용됐다. 특히 진보든 보수든 정치권은 가짜뉴스로 생성되는 분노와 증오를 자양분 삼아 정파적 이익 챙기기에만 골몰하는 양상을 보였다. 양쪽 다 나라를 위한다고 말로만 떠들지 실제로 나라는 눈 밖에 있고 권력 다툼에만 눈이 팔려 있었다. 이 와중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적 이익을 챙기려는 현상도 보였다. 구한말, 나라 망하게 한 위정자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은 무엇보다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 실종에 기인한다. 그들이 자기편에만 적용되는 정의관(觀)을 갖고 있으니 온 나라가 편 갈라 싸우는 것이다. 4류 정치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정치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에게 있다.
올해는 4월에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지금처럼 정치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로 간다면 여든 야든 오로지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게 선거 전략이 될 것이다. 패거리 싸움은 막심해질 것이다. 그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합리적인 시민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4류 정치를 욕하기 전에 그동안 지연 학연 같은 낡은 봉건적 사고의 판단으로, 사리사욕을 기준으로 4류 정치인을 선택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렇게 선택한 이들의 수준이라고 했다. 유권자들이 나서서 합리적 중도층의 목소리가 더 커지는 게 가능하도록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단체장들이 신년사에서 이구동성으로 우리 경제 상황이 새해에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치를 지탄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의 팽창은 전 세계의 경제 환경을 뒤바꿔 놓고 있다. 우리에게는 전에 없던 시련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에는 해결하기 벅찬 수많은 도전적 과제들이 놓여 있다. 정치적으로는 무한 대립과 87체제의 종언, 경제적으로는 극심한 양극화와 세계 경제 환경의 격변, 사회적으로는 빠른 고령화와 인구절벽 및 세대 갈등, 국제적으로 미·중의 세계 안보 전략 변화, 남북 관계의 중대한 변곡점 등 각 분야에서 동시다발적 뉴노멀 상태로 진입하는 과정에 있다. 퍼펙트 스톰에 가까운 위기가 도래하는 것이다.
2020년, 그냥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곳곳에 절망과 회한이 있더라도 이를 희망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치지도자들은 리더십 회복과 발휘에 온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 그것이 올해 가장 중요한 일이자 그들에게 부여된 엄중한 책무다. 최소한 후대에게 부끄러운 사람들로 기록되지는 말아야 한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변화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때를 맞았다. 절망과 회한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는 정치 리더십의 통찰력과 안목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이 극대화하도록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을 해야 한다. 이념적 선동이나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말고 각자가 균형성과 책임성을 회복해야 한다.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우호적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위기는 기회와 같이 다닌다고 한다. 지금 위기가 왔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믿음을 갖고 이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 2020년, 대한민국 곳곳에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설] 정치리더십 회복해 절망과 회한을 긍정 에너지로 바꾸자
입력 2020-01-01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