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가 드디어 시작됐다. 휴머노이드(로봇)가 인간과 공존하는 것은 30년 뒤쯤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만들고, 채소를 재배하는 일에서 인간은 이미 퇴출되고 있다. 식당에서도 키오스크 같은 ‘괴물’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모든 산업에서 기술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그 분야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70대의 경제학자인 이정전은 ‘초연결사회와 보통사람의 시대’(여문책)에서 “대량실업을 넘어 완전실업”의 시대가 와서 탈노동 사회가 될 테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모든 일을 인공지능에 맡기면 그만인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빅데이터와 사회적 연결망으로 말미암아 일반 대중이 전문가와 엘리트를 밀어내는 보통사람의 시대가 될 거라고 예측한다.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견해도 비슷하다. 그는 ‘자동화 사회1’(새물결)에서 “21세기에 자본주의는 점점 더 인간의 고용 없이 인공지능과 로봇 등이 하루 24시간, 1주일 내내 작동하는 무한노동 체제로 진입하면서 인간의 일자리, 아니 인간 자체가 부정되는 단계로 진화 중”이라고 했다. 스티글러는 디지털 경제는 꿀벌의 ‘수분’에 비유될 네트워크 경제가 구글 페이스북 등 몇몇 벌통의 소유자가 알고리즘이란 기술을 이용해 꿀벌이 낳는 수분의 결과물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21세기의 교육과 인간의 형성은 상호 수분이라는 전혀 다른 모델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벌통을 독점한 구글 등이 이런 상호 수분을 ‘알고리즘적 통치성’으로 왜곡하고 ‘자동화’해 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니 한국 사회의 진짜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교육 개혁과 교육 혁명이어야 한다며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교육이야!”라고 외치고 있다.
모든 것은 인공지능의 이전과 이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과 노동의 개념 자체가 달라져야 마땅하다. 평균 지능지수(IQ)가 100인 인간이 100배나 똑똑한 인공지능을 비서로 두는 세상에서 과거의 인문학이 통할 리 없다. 인류 5000년 역사에서 인간이 새 기술에 완전히 종속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인간은 정보의 저장과 보관과 이동 같은 일은 인공지능이란 비서에게 맡기고 인간만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갈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을 무엇으로 상상할까? 이미 청소년들은 SF나 판타지 등 서브컬처를 통해 불안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우주로 가는 계단’(전수경) ‘페인트’(이희영) ‘너만 모르는 엔딩’(최영희) 등 작년에 최고의 청소년 문학으로 선정된 책들은 장르문학 일색이다. 지금 미래가 가장 불안한 10대들이 SF나 판타지를 미래 역사의 교과서로 여긴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책 시장에서 장르문학은 주류로 올라섰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화제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2018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서브컬처의 ‘서브(sub)’에는 상하의 개념만이 아니라 ‘인터(inter)’의 뜻도 포함돼 있다. ‘서로의’ ‘상호간의’라는 뜻도 갖고 있어서 서로 연결한다는 확장성을 내포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문학시장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인문학은 어떨까? 과학기술 혁명 시대가 되면서 인문학의 중심인 문학, 역사, 철학 등 ‘문사철’에 과학이 추가됐다. 인공지능의 역할이 커지면서 인간의 본질을 전환시키는 새로운 인문학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서브컬처 인문학이 아닐까 싶다.
SF는 단순한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근원적으로 상상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작품을 이해할 이론적 토대는 아직 일천하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읽거나 쓰면서 직시할 주요한 개념이 무언지 알려주는 책은 이제 막 출간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인문학 위기의 시대에 서브컬처 인문학은 무한히 확장될 일만 남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