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실질적 몸통으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가 미국 외교의 ‘비선’으로 활동하며 비정상 외교를 펼쳤다는 정황이 또 포착됐다. 이번 대상은 남미의 독재국가 베네수엘라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현지시간)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긴장이 한껏 고조됐던 지난해 9월 줄리아니가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니콜라 마두로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남미 좌파의 거두인 마두로정권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는 압박 전술을 펴고 있었는데 물밑에서는 비선 인사가 마두로 측과 은밀하게 접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줄리아니와 마두로 대통령 사이 통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통화에 앞서 그해 봄 당시 현역이었던 피트 세션스 공화당 전 하원의원이 비공개 특사 자격으로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마두로 대통령과 면담했는데 줄리아니의 9월 통화는 당시 면담의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WP는 전했다.
문제는 두 사람 모두 베네수엘라와 사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었다는 데 있다. 텍사스가 지역구였던 세션스 전 의원은 핵심 지지기반인 에너지회사 관계자들이 석유부국 베네수엘라에 관심을 갖고 있어 베네수엘라와의 관계에 집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줄리아니가 왜 베네수엘라 문제에 개입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그 역시 지난해 8월부터 베네수엘라에 진출한 미국 기업 임원 2명을 자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줄리아니는 지난 8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사의 임원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12억 달러 규모의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자 사건을 수임해 그의 변호사로 나서기도 했다.
줄리아니의 마두로 물밑 접촉에 대해 한 소식통은 “당시 접촉에는 (줄리아니 등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자리하고 있다”며 “마두로 대통령의 정권 이양을 유도하면서 자원 부국인 베네수엘라에 다시 사업 루트를 뚫기 위한 비공식 외교 협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줄리아니와 마두로 측이 진척시킨 협상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됐다. 줄리아니는 2018년 말 볼턴 전 보좌관을 만나 ‘마두로 정권과의 대화 모드’를 제안했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미 행정부 내에서는 공식 직책도 없는 줄리아니가 외교 절차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미국의 대외정책의 일관성을 깨뜨리고 있다는 우려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전직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왜 자꾸 줄리아니가 이런 짓들을 벌이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