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경영권 갈등, 내년 3월 주총까지 계속될 듯

입력 2019-12-31 04:05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이 성탄절에 발생한 ‘모자 다툼’에 대해 30일 공동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반기’를 들며 점화된 총수 일가 갈등은 일단 서둘러 봉합됐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터지는 오너리스크가 한진그룹의 대외 이미지와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주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권 분쟁의 불씨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조 회장과 이 고문은 사과문에서 “조 회장은 어머니인 이 고문에게 곧바로 깊이 사죄했고 이 고문은 이를 진심으로 수용했다. 저희 모자는 앞으로도 가족 간 화합을 통해 고 조양호 회장의 유훈을 지켜가겠다”고 했다. 조 회장은 지난 25일 이 고문의 자택을 찾아 앞서 조 전 부사장이 법무법인을 통해 조 회장을 공개 비판한 것과 관련해 어머니인 이 고문이 이를 묵인한 것 아니냐는 불만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서로 언쟁을 벌인 바 있다.

재계에선 이를 두고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간 갈등에 어머니 이 고문까지 참전해 총수 일가 전체의 불협화음으로 비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내년 3월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둘러싼 표 대결이 예상되는 가운데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등 견제 세력과 맞물려 경영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현재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은 조 회장 6.52%, 조 전 부사장 6.49%, 조현민 한진칼 전무 6.47%, 이 고문 5.31%로 압도적 우위 없이 엇비슷한 상황이어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내부 단결이 필수불가결한 상태다. 17.29%의 지분을 확보한 2대 주주 KCGI가 이탈한 우호지분과 손을 잡을 경우 경영권 전복에 나설 수 있는 상황에서 조 전 부사장 측은 지난 23일 “조 회장의 독단 경영을 막을 수 있다면 KCGI를 포함해 어떤 주주와도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갈등의 불씨를 지폈다.

조 전 부사장이 KCGI와 손을 잡고 전면전을 펼치는 등 총수 일가 지분이 나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순 없다. KCGI는 일단 “한진가 가족 갈등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선대 유훈을 강조한 이 고문과 조 회장의 빠른 봉합 움직임을 볼 때 조 전 부사장의 사실상 경영복귀 요구를 적절한 시점에 받아들이거나 내부거래 등 표면적 화합을 통해 봉합할 가능성을 업계 안팎에서는 더 높게 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현재까지 표면에 드러난 움직임을 보이진 않고 있는 이 고문과 조 전무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공산이 크다. 이번 소동을 통해 이 고문이 ‘나에게 잘하라’는 시그널을 보내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내년 3월 주총 때까지 언제든 수면 위로 재부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임원 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의 측근 대부분이 자리에서 물러나 조 회장 친정체제가 확립된 모양새”라며 “각자 입지를 확보하려는 갈등구도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