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조원 써라” 갑질 여전한 건설현장… 폭행까지

입력 2019-12-31 04:03

한국노총 소속 건설노조 간부가 서울 강서구의 한 공사장에서 “우리 조합원을 고용하라”고 압박하다가 현장소장과 몸싸움을 벌인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조합원 200만명 시대’에도 건설현장은 여전히 노조이기주의, 밥그릇 챙기기 등 고질적인 악습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지난 23일 강서구 마곡동의 한 건물 건설현장에서 ‘한국노총 간부가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현장소장 A씨의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했다.

A소장과 경찰 등에 따르면 한국노총 소속 조직국장 김모씨는 A소장의 사무실에 와 “조합원 고용 문제를 논의해야겠다”며 관리자를 찾았다. 김씨가 조합원 고용을 자주 요구해오던 걸 아는 A소장은 관리자를 부르지 않았고, 둘 사이엔 실랑이가 붙었다. A소장은 “김씨가 팔로 내 목을 툭툭 쳤다. ‘깡패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더라”며 “이후 몸싸움 과정에서 김씨가 무릎으로 갈비뼈를 가격해 전치 2주 타박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측은 “쌍방폭행으로 알고 있다. 소장 측이 밀쳐서 조직국장도 부상을 입었다”며 “원만하게 합의했다”고 전했다. 다만 A소장은 “나는 때린 적 없다. 김씨가 간곡하게 사과해서 ‘현장에 함부로 오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쓰고 합의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선 양대 노총을 중심으로 한 건설노조의 고용 압박이 일상이다. 현장을 돌면서 노조원 고용을 강요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사장 입구에서 집회를 열어 공사를 방해하는 식이다. 지난 9월엔 경기 평택의 아파트 공사장에서 고용을 요구하며 수차례 출입문을 막은 혐의(업무방해)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2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민주노총 측에 수사 결과를 문의하자 “업무방해로 기소된 조합원, 간부가 너무 많아 확인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재도 마곡동의 한 건설사 본사 앞에선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조원 고용 촉구 집회’가 매일 열린다.

최근 건설노조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문제는 더 심해지고 있다. 지난 25일 기자가 마곡동의 한 공사장을 방문했을 때도 제3 노총인 전국노총 소속 B씨가 현장소장을 압박하고 있었다. B씨는 대뜸 “당장 내일부터 우리 크레인 기사가 들어왔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현장소장이 난색을 표했지만 B씨는 “공사가 원활히 진행되길 바라지 않냐. 우리 노조원을 쓰면 다른 노조가 여기 못 건드린다”며 사무실을 떠났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들은 피해를 호소한다. 비노조원 이모(56)씨는 “‘고용 생떼’ 때문에 오랜 시간 작업을 맞춰 온 비노조원들의 팀이 해체되고 일자리를 잃는다”고 말했다. 다른 관리부장은 “노조가 ‘믿어 달라’고 해서 고용한 인부들이 정작 능률이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용 압박은 처벌도 쉽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30일 “노조가 경찰에 사전신고를 하고 집회를 열기 때문에 보호 대상이 된다. 노래를 틀거나 공사장 입구를 막아도 조치하기 모호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공사 기한이 늦어지면 피해가 커 대부분이 자포자기로 요구를 들어준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노조들이 비노조원을 배제하면 사회적 인식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노조 활동의 정당성에도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건설 현장이 근로시간, 임금 등에서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보니 노조 힘이 세진다”며 “사용자도 법을 지키고, 노조도 ‘노동자 연대’라는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