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3000억원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라임자산)이 투자한 미국 헤지펀드가 이른바 ‘폰지 사기’(돌려막기)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라임자산에 돈을 넣은 투자자 가운데 일부는 환매 중단을 넘어 아예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금융감독원은 라임자산에서 이런 문제를 알고도 고객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해당 상품을 계속 팔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조만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30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무역금융 전문 투자회사인 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IIG)의 등록을 취소하고 관련 펀드 자산을 동결했다. 라임자산은 신한금융투자와 총수익스와프(TRS)를 맺고 6000억원 규모의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 자금의 40%를 IIG가 운영하는 헤지펀드(STFF)에 투자했다.
그러나 SEC 조사 결과 STFF는 지난해 말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고객의 환매 요청을 신규 투자자의 자금으로 돌려 막는 폰지 사기를 벌였다. IIG는 손실을 숨기기 위해 ‘가짜 대출채권’을 허위로 편입시키기도 했다. SEC가 IIG의 펀드 자산을 동결하면서 라임자산이 투자한 금액도 묶이게 됐다.
라임자산은 지난 10월 기자간담회를 자청하고 “올해 상반기 싱가포르 R사와 재구조화 계약을 맺고 무역금융펀드 지분을 넘겨 투자자 손실을 2024년까지 이연시켰다”고 발표했었다. 당시 원종준 라임자산 대표는 “R사는 무역금융펀드의 손실 위험을 떠안는 대신 전체 금액 가운데 60%를 2년8개월 후에, 나머지 40%를 4년 후에 라임 측에 지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STFF 부실이 드러나면서 무역금융펀드 누적 수익률이 17.8%에 달한다고 했던 라임자산 측 주장의 신빙성은 무너진 상태다.
금감원은 라임자산의 무역금융펀드 지분이 STFF에서 R사로 넘어가는 과정을 고객에게 설명하지 않았다면,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폰지 사기를 한 건 IIG이지만, 투자처를 바꾼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라임도 사기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신규 투자자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환매’하는 행위가 없어 폰지 사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라임자산 무역금융펀드의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사인 신한금융투자에도 공동 책임이 있다고 본다. PBS는 헤지펀드 운용에 필요한 자금·자문 등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이 같은 거액의 환매 중단 사태는 전례 없던 일”이라며 “라임자산보다 훨씬 규모가 큰 증권사가 ‘단순히 라임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고 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금감원은 이르면 다음 달 초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R사가 라임자산의 사기 행위를 이유로 ‘계약 무효’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계약이 깨지면 무역금융펀드 투자 원금이 전액 손실 처리될 수 있다.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이종필 전 라임자산 부사장은 지난달 15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예정된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잠적한 상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일부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