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로 왕따… 포기의 순간, 새 삶 시작돼”

입력 2019-12-31 04:03

“뛰어내리려는 순간 엄마 얼굴이 딱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다짐했어요. 죽을 각오로 살자.”

학교 화장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열여섯 여중생은 30대가 되어 그날을 회상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생일 파티에 초대한 친구들은 오지 않았고, 엄마와 딸은 식은 음식 앞에서 부둥켜 안고 울었다. 두 권의 책을 낸 저자이자 성공한 강연자이기도 한 노선영(32·사진) 작가는 지난 18일 선천적 청각장애로 왕따에 시달렸던 청소년기에 대해 털어놓았다.

노 작가는 10살 때 특수학교를 떠나 일반 초등학교에 다녔다. 딸이 갇혀있기를 원치 않았던 부모님의 선택이었다. 친구들에게 필기 공책을 ‘동냥’하는 생활이 계속됐고, 사춘기 시절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그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때였다. 그는 “화장실에 숨었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는데 부모님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포기의 순간을 넘긴 그는 한계를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떠난 국토대장정이 도전의 시작이었다. 참가자 중 장애인은 단 한 명. 하나둘 포기를 선언한 사람들 속에서 꼬박 한 달을 쉬지 않고 걸어 완주했다.

노 작가는 ‘세계지식포럼’ 참석을 위해 “지식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는 이메일을 주최 측에 보낸 적도 있다. 포럼이 장애인 할인제도를 만들고 공식 언어 중 하나로 수어를 채택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그는 2014년 아일랜드로 ‘나홀로 유학’을 떠났고 5개 국어를 익혔다. 꾸준히 글을 써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인기 강연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들 걱정했지만 청중은 노 작가의 진심에 마음을 열었다. 그는 꼭 서고 싶은 ‘꿈의 강단’으로 힘든 10대 시절을 보낸 모교를 꼽았다. 다시 화장실에 숨어 우는 아이가 없도록 장애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도전하는 열정에 장애는 없다는 게 나의 신념”이라는 노 작가는 자신의 지난 삶을 ‘유쾌’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불우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바꿔 달라. 우리는 조금 다를 뿐”이라며 “장애인의 유쾌함도 봐 달라”고 당부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