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낭만파 야구팬… 스포츠 깊이를 증명하고 싶어요”

입력 2019-12-31 04:08
야구를 소재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며 야구팬들과 일반 시청자들에게 두루 사랑받고 있는 드라마 ‘스토브리그’. 사진은 주연 배우 남궁민이 등장하는 극 중 장면으로, 이신화 작가는 얼굴 공개를 꺼렸다. 이 작가는 “드라마 덕에 부자지간에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다는 시청자 얘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작가로서 그보다 감사한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SBS 제공

드라마 ‘스토브리그’(SBS)는 여러모로 남다르다. 야구라는 독특한 소재를 브라운관에 풀어내며 매회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대단한 긴장감으로 입소문을 타더니 시청률도 12%(닐슨코리아)대까지 파죽지세로 올랐다. 남궁민 박은빈 등 배우들의 호연과 깔끔한 연출이 두루 버무려진 극인데, 흥행의 끌차가 된 건 역시 흥미진진한 극본이었다. 그리고 이 힘 있는 극본은 한 신인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스토브리그는 신임 단장 백승수(남궁민)가 세이버매트릭스(통계학적 분석론)를 통해 꼴찌팀 드림즈를 되살리는 과정을 그린다. 일면 할리우드 영화 ‘머니볼’을 연상케 하는데 치밀함이 영화 못지않다. 29일 국민일보와 서면 인터뷰를 가진 이신화(34) 작가는 자신을 1980~90년대의 전설적 투수 선동열을 보며 야구에 빠져든 “낭만파 야구팬”으로 소개했다. 남성인 이 작가는 창작 계기에 대해 “야구의 매력을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었다”며 “세이버매트릭스는 일반적 상식을 깨는 묘미가 있고 야구라는 스포츠의 깊이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극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만년 꼴찌팀이란 극 설정이나 구단 스카우트 비리 등이 현실감 넘치게 풀어지면서 “우리 팀(선수) 얘기 아니냐”는 팬들의 글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작가는 “실제 모델은 없다”며 “허구의 얘기로 팬들이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극이 영리한 건 비단 야구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야구팀을 운영하는 프런트를 배경으로 하면서 야구를 잘 모르는 시청자까지 끌어들였다. 대학에서 극작과를 전공한 이 작가는 ‘각본 없는 스포츠만 한 드라마가 없다’면서도 ‘구현이 어려운 스포츠는 드라마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모순적 수업내용을 늘 조화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SK와이번스를 비롯해 한화이글스 등 여러 팀을 돌며 프런트의 일반적 구성 등 얼개를 잡아나갔고, 야구를 연구하는 한국야구학회에도 꾸준히 참석했다.

첫 미팅 당시 남궁민은 스토브리그 대본을 연신 치켜세웠다고 한다. 이 작가는 남궁민을 두고 “대본의 여백을 채워주고 있다. 늘 공부하는 배우”라고 말했다. 운영팀장 세영 역의 박은빈에 대해서는 “여성 유일의 운영팀장 세영은 현실성에 관한 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대변화에 맞춰)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며 “정말 생동감 넘치게 표현해주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학교 급식배선원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이 작가가 꿈을 놓지 않은 건 이야기의 힘을 믿기 때문이었다. 일을 배우기 위해 ‘지식채널e’(EBS1) 작가와 드라마 보조작가 등으로 일했던 그는 스토브리그로 데뷔 첫 타석 홈런을 날렸다. 그렇다면 이 작가가 전하고픈 말은 무엇일까. 그는 “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라며 “땀방울을 흘렸다면 그 자체로 보람을 느끼는 사회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써나갈 드라마의 모습도 이런 소신과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가치가 담긴 따뜻한 작품들을 쓰고 싶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작은 공감과 연민으로 시작해 서로를 보살피고, 그로 인해 희망이 피어나는 그런 드라마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