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지구의 안녕을 묻는다

입력 2019-12-31 00:02

2019년 끝자락에, 2020년 경자년 새해를 기대하면서 ‘지구의 안녕’을 묻는다. 시작하는 인사도, 끝맺는 인사도 아닌, 한자어 안녕(安寧)의 의미대로 말이다. 지구는 걱정이나 탈 없이 건강한가.

지구의 안녕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물음이다. ‘지탱하다’ ‘견디다’ ‘유지하다’란 뜻의 라틴어 ‘서스티네레(sustinere)’에서 유래된 말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인류의 존속과 미래에도 유지할 수 있는 지구환경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의 안녕을 묻는다는 건 지구상 모든 생명 특히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 신음하는 피조물이 몸 성히 행복한 삶을 누리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지구는 안녕한가. 기후위기 등으로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 수많은 생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어 안녕을 묻는다는 게 염치없다. 생물 종의 사라지는 속도가 멸종 위협을 느끼게 할 만큼 예사롭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종 멸종속도가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이전보다 1000배 이상 빨라졌다고 한다. 예측했던 것보다 10배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한 종의 사라짐이 아니라 공룡을 비롯해 당시 생물 종의 75%가 사라졌던 대멸종 시기에 버금가는 상황이 온다는데, 그때 인간은 안녕할 수 있을까. 그때 인간이 살아남는다면 특별히 선택받아 남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름답게 공존해야 할 하나님의 피조물과 맞바꾼, 인간만을 생각하며 정신없이 질주해온 현대문명이 과연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다행히 인간이 사라져가는 생물 종을 무감각하게 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닫게”(롬 1:20) 하셨다. 우리는 사라져가는 피조물 앞에서 다른 핑계를 댈 수 없게 창조됐다.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피조물 앞에 서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경고가 수십 년간 이어져 왔지만 변하지 않거나, 변화 속도가 너무도 느리다. 아직도 한쪽에서는 더 많은 것을 누리기에 급급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 속에 들어있는 위대한 영광에 눈을 뜬다면, 이들의 위대한 외침에 귀 기울인다면, 이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듣고 찬양하며 사랑하고 서로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더 당당하게 안녕을 물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지구의 안녕에 대한 물음이 우리가 지구의 지속성을 위해 행동하게 할 것이다. 세계는 2016년부터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정해놓고 2030년까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회도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

기실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창조와 성서가 갖고 있다. 위기 상황을 바로 보고 하나님의 자연 안에 머물며 그곳 생명의 안녕을 묻는다면, 성서 속 지속성에 대한 좋은 힘과 원리를 제대로 발견할 수만 있다면, ‘생명을 주고 또 그 생명을 더 풍성히 하려고’(요 10:10) 오신 주님만을 의지한다면…. 우리 안의 지속성에 대한 감각을 살릴 수 있다. 모두의 안녕과 평안을 위한 행동을 시작할 수 있다.

모두의 안녕을 기대하며, 지구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처럼 자신의 필요를 넘어 가난한 자와 후손, 다른 생명의 것을 앞당겨 계속 쓰는 한 지구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라며.

“일용할 양식만을 구한다면, 덜 소비한다면 생명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데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것이다.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게 해 주신다”고 한 말씀을 건넨다.

가까운 사람과 함께 지구의 물음에 응답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에게 미래가 없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